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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十



 



“계획대로 되어 기쁘시겠군요.”



 

그의 방문을 열어주며 카부토가 툭 던지듯이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상대가 원하는 말을 하게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게 하는 건 당신의 특기잖습니까?”



마다라는 가볍게 코웃음치며 담뱃대를 담배통에 올려놓았다. 카부토는 방문에 기대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계획에 없는 일을 벌일 리 없습니다. 이 연회에 대해 유곽 내에 간접적인 정보를 흘리고, 장소가 확실히 정해지기 전부터 연회가 열리는 장소가 스이센카야로 확정된 것인 양 퍼뜨려 생각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 한 일이겠죠......아닙니까?”

“사람은 본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법이지. 그리 생각하고 싶으면 생각하려무나.”



 

카부토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다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고토 나리의 반응은 생각하지 않는 겁니까?”

“아무리 그가 하마츠의 영주나 다름없는 위치라 한들 이곳은 사쿠라마치이니라. 그도 한낱 손님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뿐이야. 내가 오쇼쿠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한, 그가 내게 손을 댈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



 

마다라의 차가운 눈동자가 움직여 카부토 쪽을 응시했다.



 

“다소 귀찮게 굴긴 하겠지만 내게 화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 성급한 태도로 유남에게 정절 따위를 몰아붙이는 멍청이라면, 내 곁에 이리 오래 붙어있지 못했겠지.”

“......”

“이제 그만 닥치거라. 일을 앞두고 잡스러운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



 

카부토는 웃기지도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정도라면 이미 어떤 생각을 하든 일을 흐트러뜨리지 않을 경지일 텐데요.”



 

마다라가 피식 웃었다. 돌연 발걸음을 멈춘 그는 몸을 돌려 카부토의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 몸에서 피어오르는 아찔한 색향(色香)에 카부토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다라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물렀군. 오로치마루처럼 되긴 글렀어.”

“......!”

“내 일은 날 안는 손님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온전히 내게 묶어놓는 일이니라. 어중간한 태도로는 몸을 붙잡는 데도 급급하지.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대를 나락까지 끌어내리려면 그만한 각오와 자세가 필요한 것이니라.”



 

검은 우물 속은 깊이를 알 수 없다. 아래에는 더한 아래가 있다. 그 진리조차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끝을 알 수 없는 추락만이 예정되어 있다. 마다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서며 명령했다.



 

“땀이 배었으니 이 옷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지. 시구레와 미오리를 불러라. 새로 치장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터이니 손님께는 양해를 구한다 말씀드리는 것도 잊지 마라.”

 

 









 

연회장으로 돌아온 토비라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하시라마에게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상히 여기며 형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야, 무슨 일이 있었어?”

“토비라마여, 자네는 큰 구경거리를 놓쳤다네. 자네 형님이 한 건 해냈지.”



 

샤몬이 킬킬 웃었다. 부러움이 담긴 시선을 감추지 못한 채 하시라마를 바라보던 이시카와도 한 마디 했다.



 

“풍류 하면 자네인 줄 알았거늘, 자네 형님도 만만치 않구만. 신중하기로 이름난 그대가 그리 행동할 줄은......놀랐소이다, 하시라마 공.”

“과연 젊은이는 젊은이요, 그렇지 않소? 극락의 밤을 보내게 된 소감은 어떻소?”



 

하시라마는 얼굴을 붉힌 채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윤색되었으나 기승전결은 확실한 자초지종을 들은 토비라마는 폭군이라 불릴 정도로 사나운 성깔로 유명한 유남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들이댄 형의 대담함에도 놀랐지만, 한 순간 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보였던 형의 얼굴에 더더욱 놀랐다. 이내 원래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토비라마는 좋지 않은 예감에 미간을 좁혔다. 불행의 가능성은 일말이라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일 터였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토비라마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덜 피곤할 거라고 여겼다. 사실 다르게 놓고 보면 큰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세 번 이상의 만남을 가져야 하는 오이란, 그것도 오쇼쿠와 첫 만남에 몸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으니까.



 

“센쥬 공.”



 

방문을 열고 들어온 카무로가 오로치마루에게 귓속말을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일어나 하시라마에게 준비가 다 되었음을 알렸다. 오로치마루에게 소식을 알렸던 카무로 소년이 다가와 그의 소매를 잡았고, 하시라마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토비라마는 얼른 형을 따라 일어서 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즐겁게 보내다 오라구.”

“센쥬 공, 이리로.”



 

자리에 앉은 토비라마는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흔들었고, 하시라마를 지켜보던 연회석의 사람들도 부러움과 시기가 섞인 시선으로 그를 쫓았다. 문이 닫히자 토비라마는 상 위의 술잔을 들며 하시라마가 혹시라도 굴러들어온 박을 깨는 일을 하지 않기를 조용히 기도했다.








 

 

 

“그럼, 즐거운 밤 보내시길......”

 



오로치마루가 나가고 홀로 방에 남은 하시라마는 가슴 밖으로 튀어오르기라도 할 듯이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안내된 방을 주욱 둘러보았다. 방 안에 있는 빛이라곤 격자창으로 들어오는 어슴푸레한 달빛과 조그맣게 흔들리는 등불뿐이었다. 불빛이 있는 곳 외에는 어둠이 깔린 방이었지만 보기 드물게 화려하게 장식된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은은한 사향 냄새가 풍겼고,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장부터 편백나무로 만들고 은세공을 한 필통, 구하기 힘든 자개로 오색 무늬를 넣은 장식함까지 물건 역시 최고급품이 아닌 것이 없었다. 하시라마는 자리에서 일어서 꽤나 넓은 방 안을 서성였다. 이 상황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앉아있으면 진정할 수 없을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이건......”



 

하시라마는 벽에 걸려 있는 죽화(竹畵)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농담(濃淡)을 조절한 검은 먹으로 그려진 대나무들은 자연스러운 명암을 드러내며 그 자태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었다. 농묵으로 그린 댓잎들 위에는 흰 안료를 사용하여 눈이 내리는 것을 표현했다. 담묵으로 그려져 중간 중간이 끊긴 것처럼 보이는 얇은 대나무들의 줄기는 마치 눈에 묻힌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림 곳곳에 뿌려진 새하얀 점들은 바탕과 어우러져 대나무들을 하늘도 땅도 구분되지 않는 설원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시라마는 그림 속에서 뭔가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맨살에 내려앉은 눈의 차가움처럼 뼛속까지 스며드는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덧없는 꿈으로 끝나지는 않았군요.”

“......!!”



 

마다라는 문을 닫고 소리없이 하시라마의 옆으로 다가갔다.



 

“미천한 재주를 곱게 보아주시니 부끄럽사옵니다.”

“이 그림이, 그대의......?”



 

마다라는 말없이 시선을 내렸다. 하시라마는 겨우 진정한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마다라는 그의 곁에 다소곳이 앉아 손에 들고 있던 담뱃대를 입에 물고 빨아들였다. 옆에서 풍기는 담배 냄새를 맡으며 하시라마는 땀이 배기 시작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하시라마는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받으시지요.”



 

하시라마는 자신 앞으로 내밀어진 연죽(煙竹)을 받아들며 눈을 깜빡였다.



 

“긴장을 푸는 데 이만한 것이 없사옵니다.”



 

확실히 연기를 빨아들이니 손의 미세한 떨림과 가슴의 고동이 조금 잠잠해진 듯 했다. 하시라마 본인은 평소에도 그리 담배를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지만 한번 더, 깊이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하시라마가 연기를 뿜는 것을 지켜보던 마다라는 하시라마의 손에서 장죽(長竹)을 유유히 빼앗아 들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 대담한 행동을 보이던 분답지 않군요. 혹여 소첩이 불편하기라도 하신 것이온지?

“아니, 그런 건 아니오. 오해는 말아주시오. 단지 이곳에서 그대같은 사람과 밤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



 

마다라는 유남 특유의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응대했다.



 

“공 정도의 지위와 위치를 가진 분께서 오이란과 밤을 보낸 적이 없으시다니 드문 일이로군요. ......하기사, 늦은 새벽에 지리도 알지 못하면서 유곽을 돌아다니는 손님도 흔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시라마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그는 연회장에서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를 뜯어보듯 찬찬이 바라보던 마다라는 풋, 웃으며 말했다.

 



“과연, 공께서는 소문대로 성실한 분이시군요. 하루에 처리해야 할 공무가 결코 적지 않을 터인데......그를 다 끝마치고 오신 것이옵니까?”

“......! 그건 어떻게 알았소?”

“소첩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는 자이옵니다. 부족하긴 하나, 사람을 볼 때 다른 이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알 수 있지요. 공이 제 머리카락을 만지셨을 때, 공의 오른손 검지와 엄지에 짙은 굳은살이 있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또 공의 소매 안쪽에는 먹이 튀긴 자국이 있군요. 공무를 처리하던 그 차림 그대로 오셨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었사옵니다.”

 



하시라마는 소매 안쪽을 확인해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다라는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소서. 적어도 이 밤 동안 소첩이 공을 지루하게 해 드리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마다라는 등불에 비친 하시라마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분명 경험이 없는 남자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설마 이 정도까지 샌님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마치 유곽을 처음 찾은 사람 같지 않은가. 사실 얼마 전까지도 유곽을 찾는 일은 전무하였었다고 하니 그리 의아하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고정 고객 중 불의 나라를 자주 왕래하는 사람으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군주의 위치에 올라 불안한 입지를 가진 권력자들이 흔히 그렇듯, 민중에게라도 자신의 평판을 좋게 각인시키기 위한 소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를 보니 사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꾸미기 위한 거짓에 진저리 날 정도로 익숙한 자신의 눈으로도, 그의 반응은 꾸며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마다라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하시라마가 그를 돌아보며 긴장을 완전히 덜어내지 못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사쿠라마치가 다른 곳과 다르다는 것은 아오. 하지만 나는 이곳의 규칙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하오. 그러니 혹시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그대가 내게 알려주시오.”

 



곧다 못해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하는 남자를 기념물 보듯이 바라보던 마다라는 문득 농을 걸고 싶어졌다.

 



“코우시 이상의 오이란과는 첫 밤에 합궁(合宮)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알고 있소.”

 



맙소사. 진지하게 대답하는 남자를 보며 마다라는 비웃음과 헛웃음이 동시에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이 남자는 아무래도 불가에 귀의할 운명을 타고난 모양이었다. 취하여 즐길 것이 아니었다면 누가 그리 나서 시 경합까지 하려 들 것인가? 본디 차분한 성품이라고 듣긴 했지만 방에 자신이 들어온 후에도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차였는데, 설마 그 규칙같지도 않은 규칙을 지키려는 이유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이 돌부처 같은 남자는 자신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아침까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유남이 먼저 손을 대라고 말을 해야만 하는 손님이라니.



 

“사실 그 규칙은 그리 잘 지켜지는 편이 아니옵니다. 몇몇 유곽에서는 아예 사장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오늘은 좋은 날이고, 공께서는 연회의 흥을 돋우어 주신 공로가 있사오니 신경을 쓰시지 않아도 되옵니다.”

“아니오. 잘은 알지 못하나 그 세 번의 방문에는......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들었소. 나는 이 밤의 만남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소. 그러니 그대도 편히 여기면 좋을 듯 싶소.”

 



다루기 까다롭겠군. 단순하며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을 보아 수를 읽는 것은 쉬운 편일지 모르나, 행동이나 사건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을 보면 고토처럼 자신에게 집착하게 될 경우 매우 피곤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만큼, 진흙탕 속으로 떨어뜨렸을 때의 반응이 볼만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다라는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공께서는 알 수 없는 분이로군요. 소첩은 공께 칼자루를 드렸는데도 공께서는 그를 다시 소첩에게 돌려주셨사옵니다. 외람되오나 소첩은 두말을 하지 않습니다. 소첩이 칼자루를 쥐게 하셨으니, 공께서는 소첩의 말에 복종하셔야 하옵니다.”

 



하시라마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마다라는 오비 아래에 숨겨져 있던 흰 손을 들어 하시라마의 얼굴을 만졌다. 하시라마의 몸이 움찔하는 것을 느낀 마다라는 설핏 웃었다.

 



“공께서는 소첩에게 손을 댈 수 없어도, 소첩은 공께 손을 댈 수 있지요.”

“......!”

“시선을 피하지 말고 소첩을 바라보시옵소서. 이 방에 들어오신 순간부터 공은 소첩에게서 눈을 떼실 수 없사옵니다. 소첩의 눈을, 피하지 말아 주십시오.”

 



하시라마는 자신의 얼굴을 감싼 마다라의 손이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고 생각했다. 찰랑이는 달빛을 머금은 검은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하시라마는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방 안에 가득한 사향내 사이로 은은한 안식향(安息香)이 풍겨왔고, 더할나위 없이 따뜻하고 여린 감촉이 그의 입술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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