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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九



 



“그래서, 놓쳤단 말이냐?”

 



토비라마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의 앞에 무릎을 끓고 있던 무사는 면목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포로로 잡은 놈들은 없나?”

“세 명이 있었습니다만, 끌고 가는 도중에 습격을 받아 모조리 살해당했습니다.”

“제기랄, 철저하군......뒷처리는 제대로 했겠지?”

“물론입니다.”



 

토비라마는 그에게 물러나 지시를 기다리라 말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이걸로 남은 곳은 두 군데...... 포로를 잡는 데 실패한 것은 아쉬운 점이었지만, 유효타를 입힌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백아는 여전히 퍼지고 있었고, 토비라마는 이번의 공격이 완전한 괴멸을 유도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타격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좀처럼 꼬리가 잡히질 않는군. 유통 경로에 대해서는 파악하지도 못했어.”

“......정보원이 고갈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뭘 더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토비라마는 한숨을 쉬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하시라마에게 보고를 한 것과는 별개로, 그는 『달의 눈』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한 소탕 작전을 이전부터 계속해오고 있었다. 계획은 몇 년 전부터 세워놓았었지만,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 계획을 했을 때만 해도 그리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직감은 그 조직이 성가신 방해물이 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기 영주가 될 형은 물론이고 불의 나라에도 좋을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잡초는 자라지 않았을 때 뿌리까지 제거해야 한다, 십대 후반의 토비라마는 영민하게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판단은 적중했지만 토비라마가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 빌어먹을 조직의 성장이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는 점과, 그 안에 구축된 네트워크가 생각 이상으로 방대했고 촘촘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데도 능했다.



 

“본거지 네 개를 부쉈는데도 잡은 간부놈은 한 명뿐이라니......”

“잡았던, 이 맞는 말이겠지요.”



 

토비라마의 뒤에 서 있던 호위무사가 담담하게 그의 말을 바로잡았다. 토비라마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어렴풋이 조직의 구조와 구성원이 새기는 문신, 조직의 최고위층이 여섯 명의 간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었다. 빈약한 정보를 파고들어 추적 끝에 조직의 간부 한 놈을 어렵게 붙잡았지만, 옥에 가둬놓은 지 사흘도 되기 전에 시체로 변해버렸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명확하게 밝혀낼 수는 없었으나 어느 쪽이든 값진 정보를 빼낼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토비라마는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래도 거점을 다시 만드는 데는 꽤 시일이 걸릴 터, 시간을 벌긴 했군.”

“.......”

“아직 백아가 자라는 토양과 환경에 대해선 밝혀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헤집고 다닐 수도 없는 일......현재로선 결과를 기다리며 다른 길로 추적하는 수밖에 없겠군. 저장고들부터 없애버리는 것이 급선무다.”



 

토비라마는 담뱃대를 꺼내어 물고는 부싯돌을 부딪쳐 불을 붙였다.



 

“......사쿠라마치는 어떻지?”

“아직 특별한 징후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백분을 비롯한 백아를 원료로 해 만든 화장품들이 유행을 타면서 유입량이 늘어난 듯 합니다.”

“그건 바깥과 마찬가지로군. 계속 주시해라. 여기서 눈을 떼는 일은 없도록. 네가......그럴 일은 없겠지만.”



 

호위무사는 대답 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가 사라진 방향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토비라마는 이내 몸을 돌리고는 담배연기를 후우 내뱉으며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를 띠웠다. 일은 일이고, 여기서 즐길 건 즐겨야겠지. 사실 자신이 이곳에 따로 올 필요까진 없었다. 결과 보고는 성에서도 받을 수 있고, 정보 전달은 매를 이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굳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간만에 때가 탄 어린 소년들의 맛을 보고 싶어서였다. 평소에도 미소년들을 좋아하는 토비라마였지만, 그가 선호하는 쪽은 유남보다는 자신에게 시동으로 바쳐진 무가의 사생아들이나 차남 이하의 자제들이었다. 허여멀건하기만 하고 부드럽기만 한 쪽보다, 어느 정도 단단하고 조금은 그을린 편이 입맛에 맞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유남들을 싫어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관심 없는 편일뿐이다. 오늘처럼, 갑자기 마음이 동하는 날도 있는 법이다. 어떤 유남을 고를까 꽤나 즐거운 고민을 하던 토비라마는 문득 연회장소에서 한창 흥이 돋아 있을 자신의 형을 떠올렸다. 불현듯 밀려오는 불안감에 토비라마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촤락, 마다라의 손에 들려 있던 검은 부채가 접히며 약 반 각의 짧은 시간동안 계속되었던 춤의 끝을 알렸다. 창가로 흘러들어온 벚꽃잎들이, 그의 몸 곳곳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춤을 추는 내내 그의 움직임에 완전히 눈을 빼앗긴 상태였던 좌중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다라는 조금의 동요도 없는 얼굴이었다. 뒤이어 우레처럼 쏟아지는 박수와 감탄의 찬사들 속에서, 춤을 시작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예를 갖춰 인사를 마친 그는 코우시들이 열을 맞추어 앉아있는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의 바로 뒤에 있던 카무로 소년이 일어나 소매로 이마에 흐른 땀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오른손의 부채를 카무로의 손에 맡긴 마다라는 어두운 붉은빛 오비 밑으로 손을 숨겼다. 앉아있는 자세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하시라마를 본 이시카와는 목소리를 낮추며 장난스레 말했다.



 

“하시라마 공, 눈이 빠지겠소. 하긴 쇼히를 처음 본 듯하니 그럴 법도 하오만. 쇼히는 물건이지. 제대로 된 사내라면 그를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오. 공처럼 혈기 왕성할 나이의 젊은이라면 더더욱.”



 

하시라마는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유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의 눈 속에 깔린 노골적인 정욕에 하시라마는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불쾌함이 가슴을 타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시라마가 그를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을 때, 연회석에 앉아있던 손님 중 하나가 일어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 이 곳에 앉아있는 모든 분들의 마음은 같은 것을 원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리 아름다운 미남자를 눈 앞에 두고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진정한 사내라 볼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고 말고, 맞소!”

“암, 타당하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쇼히 오이란은 사쿠라마치 최고의 유남이지만, 제 생각에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그와 밤을 보낼 만한 자격이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와 밤을 보낼 수 있는 행운아는 단 한명 뿐이지요. 그런고로 제가 부족하나마 제안을 드리고자 하는데 어떠십니까?”



 

영주들은 흥미롭다는 듯이 그의 말을 경청했다. 손님들이 들은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자 그가 다시 입을 열며 마다라가 앉아있는 쪽을 응시했다.



 

“쇼히 오이란이 가장 즐겨하는 일은 와카나 시를 주고받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러니 각자 시를 읊는 것으로 경합(競合)을 하여, 오이란의 판단에 따라 승자를 가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남자가 오로치마루를 쳐다보자, 그는 자리에서 꽤나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상황을 관조하고 있는 마다라에게 의사를 물었다.



 

“알겠사옵니다. 그리 하지요.”



 

그 자리에 앉아있던 손님들은 이구동성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로치마루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경합을 하려면 주제가 있어야지 않겠습니까? 오이란께서 정해주시지요.”

“寂寂空閨裏 적적한 빈방 속에

錦衾披向誰 비단이불 누구를 위해 펴나

相思深夜恨 깊은 밤 서로 그리워 생각하는 한을

唯有一燈知 오직 한 등잔불만 알겠지1


.....주제는, ‘정(情)‘으로 하지요. 특별한 제약은 두지 않겠습니다. 자유로이 말씀하여 주시면 되옵니다.“



 

손님들은 마치 자신이 행운아가 될 것을 계시라도 받은 듯 너도 나도 의기양양하게 나서 시를 읊기 시작했다. 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불같이 솟아나는 연정을 노래하는 사람이 반, 그를 향한 애끓는 정의 깊이를 표현하려는 사람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어떤 시도 마다라의 얼굴을 감정으로써 움직이게 하지는 못했다. 그는 시종일관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시를 듣고 있었다. 뒤로 갈수록 초조해진 손님들은 자신의 감정을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려 애썼고, 그런 시도는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들이 읊는 시만 들으면 마치 쇼히는 오직 그들의 짝이 되기 위해 태어난 운명의 연인쯤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줄줄이 애절하기 그지없는 시들이 흘러나왔지만, 마다라는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한 손님은 자신의 연인에 대하여 관음보살에게 따뜻하기를 바랐지 차갑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시를 지어 원망하는 듯한 어조로 읊기도 했다. 마다라는 한쪽 눈썹을 살짝 들어올리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마다라는 눈을 깜빡이며 실망 또는 부질없는 기대를 품고 연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이 하시라마에게 잠시 와 닿았고, 하시라마는 그를 마주보는 대신 시선을 내려 피해버렸다. 눈을, 바라볼 수 없다......그를 정면에서 본다면 자신은 입도 열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선이 떨어진 것을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게 된다.



 

“!”



 

재빨리 도망치지 못한 시선이, 허공에서 붙잡혔다. 순식간에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시야에서 밀려나가고, 눈으로 뒤덮인 설원처럼 흰 바탕만이 남았다. 그를 따라 춤추다 그의 머리에 내려앉아있던 벚꽃잎이,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팔랑거리며 자신의 손등 위에 떨어졌다. 하시라마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서 천천히, 마다라에게로 다가섰다. 마다라의 바로 앞에 섰을 때 하시라마는 자신이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가졌지만 이내 그 물음은 사라져 버렸다. 순간 강한 바람에 떨어져 공기와 뒤섞인 연홍빛 꽃보라가 창문을 넘어와 방 안에 가득 흩날렸고, 하시라마는 아직 꽃잎들이 머물러 있는 마다라의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留春春不駐 잡을 수 없는 봄이지만 머물렀으면

春歸人寂寞 봄이 가면 남은 이만 쓸쓸해지니

厭風風不定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은 그만 갔으면

風起花蕭奈 바람 일어 무수한 꽃잎이 지니2"

 



놀란 듯 동그랗게 커진 검은 눈동자가 이내 흥미로움을 담은 채 빛났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마다라는 자리에서 일어서 바람과 함께 서서히 가라앉는 꽃잎들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이 세상에 만약 벚꽃이 전혀 없었더라면 世の中にたえてさくらのなかりせば

봄을 맞는 마음은 평화로웠을 텐데 春の心はのどけからまし3

 

떨어지기에 이 벚꽃은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을 散ればこそいどと桜はめでたけれ

괴로운 세상 누가 오래 머무르겠소 憂き世になにか久しかるべき4



 

하시라마는 자신이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답가를 말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다라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입에 담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소첩의 오늘 밤은 이 분에게 드려야겠군요. 약조는, 지켜져야 하는 것이니.”





 

  1.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 규정(閨情).
  2.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시 낙화고조부(落花古調賦).
  3. 헤이안 시대의 시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在原業平, 825~880)의 시. 작자 미상이라고 쓰여 있을 때도 있음.
  4. 위의 시에 대한 답가(答歌). 작자 미상. 두 시의 출처는 모두 이세모노가타리(伊勢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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