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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十一



十一

 



부채를 쥔 손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내딛고, 부드러우면서도 천천히 몸을 돌리며 부채를 접는다. 접은 부채를 쥔 오른손을 가슴으로 끌어당기고 아직 펴진 상태인 왼손의 부채를 손과 함께 곡선을 그린다. 다시 오른손의 부채를 펴고, 발을 모으며 시선을 돌린다. 춤은 결코 빠르지 않지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 있다. 마다라는 이마와 겨드랑이 아래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십 년을 넘게 추어 온 춤이지만, 출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우치하류의 부채춤은 손발의 움직임, 시선 처리, 유연한 근육의 팔다리 동작과 춤을 추는 사람의 감정표현이 완벽한 조화를 이뤄야만 그 특유의 느낌을 살릴 수 있었다.

 



‘시선을 흐트려서는 안 된다. 춤 한 동작 한 동작마다 시선이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춤에 몸을 맡기되 머릿속으로 스스로의 움직임을 그려봐야만 한다. 곡선이 깨끗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부채를 펴고 접을 때 어설프게 해서는 안 돼. 부채를 펴고 접는 손동작까지 몸에 완전히 배어들어야 한다. 발을 움직일 때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라. 춤을 출 때는 그 누구도 너를 방해하게 두지 말거라. 네 안의 감정을 그 손과 부채 끝에 담는 거다.’

 


마다라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몸을 서서히 일으켜 펴져 있던 부채를 접어 한손에 들었다. 속옷은 이미 땀으로 젖은 채 몸에 달라붙어 불쾌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머리카락과 땀이 흐르는 얼굴을 건드리는 바람은 무척 기분 좋았다.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등 뒤로 넘기며 마다라는 욕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을 봐도 정말 아름답군요. 그 부채를 쥐고 있는데도 히스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오로치마루가 박수를 치며 뿌듯하다는 듯이 웃었다. 여느 때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마다라를 바라보고 있던 요우키는 얼른 그에게 달려가 들고 있던 흰 천을 건넸다.

 



“네게 찬사를 받아봤자 하나도 기쁘지 않다.”

“매정하시긴.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 감탄이니 의심하지 말아주십시오. 하지만 너무 자주 연습하시진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춤이 엉성해지는 것도 큰일이기는 하나, 당신의 아름다운 몸에 쓸데없는 근육이 붙으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얼굴의 땀을 닦아내던 마다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일이니라.”

“후후, 기분나쁘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을 위한 충고이니 너그러이 받아주십시오.”


 

 







 

“하시라마 공은 완전히 당신에게 빠진 것처럼 보이더군요.”

 



젖은 머리의 물기를 닦으며 빗질하고 있던 마다라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오로치마루를 보며 눈썹을 올렸다. 오로치마루의 시선이 경대 옆에 놓여있는 서신 꾸러미들로 향했다. 모두 하시라마가 보낸 것이었다. 그는 아무리 적어도 나흘에 한 번, 통상 이틀에 한 번 꼴로 서신을 보냈다. 덕분에 마다라는 꼬박꼬박 답신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어 귀찮아 죽을 맛이었다. 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뒤로 넘기며 오로치마루를 흘겨보았다.

 



“입이 찢어지는군 그래.”

“제 눈이 옳았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이걸로 당신의 나지미가 또 늘어나겠군요.”

 



마다라는 같잖다는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그깟 나지미가 얼마나 되든 알게 무어냐. 늘어나면 늘어나는 대로, 줄어들면 줄어드는 대로 귀찮을 뿐이다.”

 



마다라는 오늘 도착한 서신을 펴들었다. 과연 도련님답다면 도련님다운, 단정하고 유려한 필체의 글자들이 흰 종이의 여백을 채우고 있었다.

 



渡水復渡水 물 건너 다시 물 건너

看花還看花 꽃을 보고 또 꽃을 보느라

春風江上路 봄바람 부는 강 길

不覺到我家 내 집에 이른 것도 몰랐네1

 



호오, 오로치마루가 옆에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지위가 지위이다보니 하시라마가 서신에 적어보내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그는 잘 지내느냐는 안부인사 같은 간단한 문장들을 제외하고는 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담긴 시를 써 보냈다. 마다라는 말없이 서신을 뒤집어 붓을 들고는 그 뒷면에 그대로 답신을 써내려갔다.



 

牡丹含露眞珠顆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美人折得窓前過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含笑問檀郞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花强妾貌强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檀郞故相戱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强道花枝好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美人妬花勝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踏破花枝道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花若勝於妾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今宵花同宿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2



 

오로치마루는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단하군요, 대단해. 과연 당신입니다, 쇼히.”

“......입발린 헛소리는 그쯤이면 되었느니라. 그리고 넌 내게 해야 할 말이 있을 텐데. 그 일은 어떻게 되었지? 아직도 별다른 성과가 없는 것이냐?”

“예의 그 건 말이군요.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일곱 살짜리 꼬마의 기억력에 의지해 사람을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금방이라도 칼로 찔러죽일 듯한 날카로운 시선을 받고 나서야 오로치마루는 흠흠 소리를 내며 웃음기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수소문해 보니 그 남자에 대한 목격담은 꽤 여기저기서 나오더군요. 그의 팔뚝에 달의 눈 조직 문신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아있는 행적과 『달의 눈』의 움직임을 대조해 보았을 때 그가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

“하지만 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이라 함은?”



 

오로치마루는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톡톡 두드리며 다른 손으로 턱을 받쳤다.



 

“그 남자에 대해 말한 사람들의 말이나 이런 저런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들은 모두 몇 년 전의 것이더군요. 그 당시는 매우 활동적으로 돌아다닌 모양입니다. 주로 퇴역한 병사나 행상인으로 행세하고 다닌 것 같고요. 덕분에 행적을 알아내는 것은 비교적 수월한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ㅡ최근에는, 자취가 묘연해졌다?”



 

오로치마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경우 둘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요. 죽었거나......신분을 완전히 세탁해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만약 후자라면 주변의 이목과 평판을 각별히 신경쓰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든, 자신의 힘으로 그렇게 되었든 간에 과거를 노출시키고 싶지는 않을 테니...... 깔끔하게 죽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보이는군요.”

“......”

“당신도 그걸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오로치마루가 기분 나쁘게 웃었다.



 

“아마도 제가 드릴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큰 비밀을 덮으려는 사람일수록 난폭해지기도 쉬운 법이지요. 그쪽은 자신의 정보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마음이 놓일 테니 정보의 수집을 게을리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달의 눈』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이 이상 조사를 진행하게 되면 역으로 추적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다라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한 발 앞으로 나간 것이다. 비어있는 공간에 채워 넣을 조각들이 느리지만 착실하게 모이고 있다. 서두르는 것은 계획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느긋하게 손을 놓고 있을 마음도 없다. 마다라는 됐으니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어찌되었든 오로치마루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게 전부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드리자면”

 



오로치마루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것입니다.”

 



마다라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 뱀같은 놈은 직설적으로 말해줄 수도 있는 것을 빙 돌려 말해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원래 사람이 골머리 썩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놈이니 말해봤자 소용도 없다.


자신에게 등잔 밑이라고 한다면 그는 가까운 나지미들, 그 중에서 고토 미츠자네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다라는 얼마 전부터 눈에 띠게 헤퍼진 그의 씀씀이와 지나친 소비를 지탱하는 의문의 화수분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을 기억해냈고, 석연치 않은 결론을 내렸던 탓에 찝찝한 뒷맛을 느꼈던 것도 떠올렸다. 『달의 눈』......과연, 그렇게 된 건가. 마다라의 눈이 매섭게 번쩍였고 입은 절로 미소를 머금었다.

 



“나도 멍청했구나. 얼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어.”

 



자조하는 듯한 마다라의 말에 오로치마루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마다라는 미소를 지우고 서릿발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일부러였군. 빌어먹을 고자새끼가.....”

“이런, 무슨 말씀이신지? 그리고 그렇게 험한 말투는 그만둬 주시지요.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시치미를 떼는 건 관둬라. 쳐죽이고 싶어지니까. 나도 그리 좋은 취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네 취미는 정말 최악이다.”




오로치마루는 방문을 밀어 열며 마다라를 돌아보았다. 밖으로 나가기 전, 그는 여전히 입에 웃음을 건 채 태연하게 말했다.

 



“그 덕에 당신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있지요. 당신의 눈이 증오와 살의로 물들어 새카맣게 타오를 때의 모습은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아까울 정도입니다. 이 정도면 남는 장사라고 할 수 있잖겠습니까?”


 

 







 

처리할 공문서들을 한 아름 안고 관저의 집무실로 들어온 토비라마는 부리나케 뭔가를 감추는 하시라마를 보고 얼굴을 구겼다. 토비라마가 책상 앞으로 다가갔을 때 이미 그 종이는 귀신같이 사라진 후였으나, 남녀관계든 남남관계든 쓸데없이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자랑하는 그는 종이의 정체를 직감적으로 파악하고는 한숨을 쉬었다.

 



“형.”

“아, 음, 왜 그러느냐, 토비라마?”

“형이 지금 연서(戀書)같은 거 쓸 때야?”

 



하시라마가 낭패라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본 토비라마는 짜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니.

 



“형이 연애질을 하든 외사랑을 하든 그건 형 마음이고 내 소관 밖의 일이지만, 공적인 일에 지장을 주는 건 못 봐줘.”

“토비라마, 난 그런 일은......”

“진심이 되는 것도 포함이야. 알면서 왜 그래.”

 



토비라마가 딱 잘라 말하자 하시라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연애생활에 대한 것이라면 토비라마 자신이 뭐라 말할 위치는 못 된다. 차기 영주로서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고수해왔던 형과 달리 주색(酒色)을 좋아하는 데다 대놓고 미소년 애호가인 자신이다. 그럼에도 그의 버릇에 대해 신하들 사이에서 별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나이를 먹어 입장을 자각한 것도 있지만 주색은 어디까지나 여흥, 이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토비라마의 성격 탓도 있었다. 귀찮게 달라붙는 것은 질색이다. 특히나 손을 대서는 안 되는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문제가 된다. 그러나 마음은 생각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특히나 후계자이며 실질적인 영주 자리에 있는 하시라마에게 그는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어야 할 중요한 교훈이었다.

토비라마가 나간 후, 하시라마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손으로 눌렀다. 어릴 때부터 권력자로서 교육받은 자신이 단순한 기분이나 앞뒤를 생각하지 않은 격정에 따라 움직일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이미 빠져버렸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하시라마는 가장 아래쪽에 있는 서랍 속에서 첫 줄만을 채운 연서를 꺼내어 들었다.

하시라마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시 붓을 들려 했으나 그를 든 손만 그대로 내려놓고 말았다. 써야 할 말, 쓰고 싶은 말은 넘쳐나는데도 붓을 놀리면 어떤 문장이든 색이 바래버린다. 무슨 말을 써도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쇼히.”

 



유남과 유녀들의 초상화를 파는 곳에서는 그의 그림이 벌어들이는 돈이 가게를 먹여살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사쿠라마치를 대표하는 관능미(官能美)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쇼히의 나지미가 된 자는 주변의 경탄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시라마는 그에게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사쿠라마치의 유남인 그에게 지위는 애초에 아무래도 상관없는 요소에 불과했다.

하시라마는 종이를 구겨버렸다. 그에게로 향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이리 서신을 적어보내고 있긴 하였지만 종이에 쓴 말들로는, 이런 편지만으로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다. 그는 눈을 감고 이마를 손에 기댔다. 보고 싶다. 지금 당장, 그를 만나러 가고 싶다. 한 번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치솟는 불길처럼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사쿠라마치까지 말 없이 뛰어가더라도 괜찮았다. 스스로에게 이런 격정(激情)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안달하는 몸을 억누르기 위해 자신의 자제력을 모조리 동원해야 했다. 때마침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덕분에 하시라마는 힙겹게나마 정신을 가다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중키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내린 남자였다. 옷차림과 입고 있는 갑옷, 허리춤에 꽂혀 있는 칼 두 자루를 보아하니 하급 무사 출신의 호위인 것처럼 보였다. 하시라마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임무 중에 온 것인지 복면을 하고 있어 얼굴은 알 수 없었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살짝 미간을 구기는 듯 하더니 하시라마의 앞으로 걸어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

“보고드릴 것이 있어 토비라마 님을 뵈러 왔습니다. 여기 계신다고 들었습니다만.”



 

하시라마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눈 앞의 호위무사를 응시했다. 사냥감을 몰아넣는 맹금류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산전수전을 다 겪은 무사 특유의 거친 분위기와는 상반되게도, 그 목소리는 앳된 청년의 것이었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아마 지금쯤이면 처소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하네만.”



 

알겠다는 듯 무뚝뚝하게 목례를 한 그는 바로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갔다. 하시라마는 그의 왼쪽 눈 위에 선명히 그어진 붉으스름한 선을 보았다. 꽤나 눈에 띨 것 같은 병사였다. 다섯 나라의 동맹이 공고해진 후 오랫동안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병사들 중에는 지원하여 훈련을 받았어도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는 자들이 상당수였다. 하지만 방금 나간 젊은 병사는 전쟁의 수라장을 직접 경험했다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시라마는 붓에 먹을 묻히며 미간을 찌푸렸다. 평화로운 시대라 불리는 지금도 불의 나라 각지에서는 살인사건과 행방불명, 겁간, 곳곳에서 출몰하는 도적떼들과 노상강도들로 인한 피해가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가능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 나라 어딘가에서는 사람이 죽고 어미나 아비를 잃은 아이가 울고 있었다. 저 병사 역시 그런 아이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가 무거웠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제보다 나은 평온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막막하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젊은이에게 잦은 실수나 사고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시라마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피끓는 청년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영주였다. 그의 감정은 누군가를 향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 편이 훨씬 안전한 선택이었다.




 



  1. 명나라 시인 고 계(高 啓,1336~1374)의 시 심호은자(尋胡隱者). 원문은 내(我)가 아닌 그대(君). 하시라마의 의도적인 변형;;
  2. 이규보(李奎報, 1168~1247)의 시 절화행(折花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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