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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八








 

“실로 오랜만입니다, 샤몬 공! 한 잔 받으시지요.”

“이거이거, 이시카와 공. 그 사이 얼굴이 더 좋아지셨소. 대체 어떤 보신을 하신 게요? 비법 좀 알려주시구려.”

“술맛이 아주 그만이군! 내 잔도 받아주시겠소이까?”

“물론이지요, 오늘처럼 기쁜 날에는 얼마든지 마셔도 좋을 것이 아니겠소!”



 

스이센카야의 가장 큰 연회장에서는 술자리가 한창이었다. 스이센카야의 니카이마와시들은 술과 안주가 떨어져 역정을 받는 일이 없도록 복도에서 대기하며 방 밖으로 나오는 유녀, 유남들과 눈길을 교환해 방 안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의 연회는 다른 연회와는 달랐다. 방을 드나들면서 필요 이상으로 오래 머물렀다간 엿듣기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당장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그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분주하게만 움직이려 노력했다. 코우시(格子)와 산챠(散茶)1 중에서도 상위인 자들로 구성되어 들여보내진 유남과 유녀들 역시 내색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칫하여 말실수라도 나오는 일이 없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소리가 너무 작구나, 더 크게 연주하라!”

 


샤미센과 코토(琴)2를 뜯는 타이코 신조(太鼓新造)3들의 손놀림이 바빠졌고, 코즈츠미(小鼓)4를 두드리는 소리가 한층 더 흥겨워졌다. 게이샤들 대신 기예에 재주가 있는 코우시들이 나와 춤을 추었고, 손님들은 술을 마시며 그를 감상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보이는 밤의 벚꽃들은 새하얗게 빛을 내며 꽃잎을 떨어뜨려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상석에 앉은 다섯 나라의 영주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술잔을 맞대었다.



 

“다섯 나라의 영주들이 모두 모인 것은 그 전쟁 이후 처음이구려.”

“그렇습니다. 피차 나랏일로 바쁘다 보니 회담이나 교섭으로 두 세명이 만나는 일은 있어도 이리 모이는 일은 없었더랬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소이다. 오늘도 사실상 다섯이 다 모인 것은 아니지요. 부츠마 공의 용태가 그리 좋지 않다니 슬픈 일이오. 하시라마여, 내가 보낸 위문품은 잘 받았소?”

“빨리 답을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이시카와 공께서 베푼 은혜에는 분명 아버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시라마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고는 흙의 나라 영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 나라의 영주는 그리 쉽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오, 하시라마 공.”

“저와 제 동생은 아버님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공들께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두운 피부를 가진 검은 머리의 남자가 하시라마를 보며 입을 열였다.



 

“겸손도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오. 이 자리에 있는 자들 모두 그대가 실질적인 영주로서, 아버님인 부츠마 공의 뜻을 이어 불의 나라를 훌륭히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소이다. 비록 나이가 어릴지라도 우리는 그대를 동등한 위치에서 대할 것이오.”



 

다른 영주들 역시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한 시선으로 상황을 관찰하던 토비라마는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렸다. 영주들은 아직 센쥬 하시라마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하시라마의 겸손한 태도와 처신, 뛰어난 능력이 그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갖게 만드는 이유는 그들이 예상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편견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들의 능력과 연륜, 경험에 대한 오만이다. 물론 정말로 하시라마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를 신뢰하는 일에 있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차피 권력자는 두 부류의 인간밖에는 인식할 수 없다. 방해물 혹은 적, 아니면 도구.



 

“토비라마 님.”



 

한 호위무사가 소리 없이 다가와 토비라마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토비라마는 한창 때인 연회를 떠나는 것이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이내 영주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방을 나갔다. 의아하다는 눈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하시라마에게, 토비라마는 걱정 말라는 눈짓을 해 보였다.



 

“에에잇, 시시하구나, 시시해!”



 

이시카와가 술잔을 탕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적당히 달아오른 얼굴로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엔 꽤나 제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단조로워지지 않았는가. 소문난 스이센카야의 코우시들도 이제 명성을 잃을 때가 된 게로군! 공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물의 나라의 영주, 뱌쿠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받았다.



 

“술과 음식은 나무랄 데 없지만, 연회를 평가하려면 그것만으론 턱없이 부족하오. 무릇 연회란 제대로 흥을 돋우지 못한다면 그 의미가 없는 법, 사쿠라마치 최고의 유곽이라 불리는 이 스이센카야의 연회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다른 유곽의 수준도 알만하겠구려.”

“어쩌면 최고라는 그 이름을 내놓을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번개의 나라의 영주가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다. 이시카와는 눈에 띠게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한탄했다.



 

“히스이 오이란이 없는 것이 아쉽군. 그의 춤이 있다면 이 연회는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말이오.”



 

바람의 나라 영주인 샤몬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공손히 앉아있는 오로치마루를 바라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오로치마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멈춰 있는 코우시들과 신조들에게 물러나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일말의 당황도 나타내지 않은 채 상석 쪽으로 걸어가 무릎을 끓고 절을 했다.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외람되는 일이긴 하오나 소인의 짧은 소견을 말씀드리면, 공들께서 이 연회를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호오, 그 말은 역시 아껴두었다는 말이로군.”



 

뱌쿠란이 눈을 빛내며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오로치마루는 더없이 순종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들께선 이미 눈치채시지 않았는지요?”

“그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 않겠나! 기다리느라 지쳤다네. 지금에서야 나서다니 자네도 참 야박하군. 이런 연회를 열어놓고선 아직 익지도 않은 새파란 것들이나 내놓으니 말일세. 이제 자네가 나섰으니 더 기다릴 필요도 없는 것이겠지?”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이제 자네가 나섰으니 책임을 지게나, 오로치마루.”



 

번개의 나라의 영주, 젠쥬보의 말에 오로치마루는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하시라마는 그를 바라보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와시의 그림자가 움직이며 문이 열렸다. 부드러운 소재로 된 기모노 특유의 사르락대는 소리가 들릴락 말락한 발소리와 함께 열린 문을 통해 들려왔다. 발소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방 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하시라마의 옆에 앉아 있던 샤몬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인폭군(美人暴君)의 등장이로군.”



 

마침내 방문 앞에 도달한 발소리의 주인을 본 순간, 하시라마는 심장에서 순식간에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아찔한 느낌을 받았다. 그다. 하시라마는 새벽의 유곽을 배회하다 우연히 만난, 텅 빈 눈빛을 숨기고 있던 흰 얼굴의 남자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정도로 화려한 차림을 한 채 걸어들어오는 유남은 분명 그였다. 붉은 화장을 한 매혹적인 눈이 빠르게 방안을 흝었다. 하시라마는 가슴으로 올라가려는 손을 간신히 제지했다. 잡을 대상을 찾지 못한 손이 허공을 움켜쥐었다. 심장은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였나. 그가, 저 남자가 바로......’



 

넋을 놓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좌중을 무시하고 코우시들이 물러난 자리 한 가운데에 선 그는 검은 부채를 잡은 두 손을 가슴에 교차시키며 우아하게 한쪽 무릎을 끓고는 고개를 숙였다.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넋을 놓게 되는 눈은 고개를 들 때까지 단단히 감겨 있었다. 질 좋은 먹처럼 검은 눈동자는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가 그가 일어서자 다시 모습을 감춰 버렸다. 가장 앞에 앉아있던 타이코 신조가 첫 음을 퉁겼다. 그와 동시에, 그의 왼손에 쥐어져 있던 부채가 펼쳐졌다.




 




 




  1. 유녀 계급 중 코우시 바로 밑의 등급. 보통 산챠까지를 고급 유녀로 쳤다.
  2. 거문고처럼 생긴 일본의 전통 악기.오른손 엄지,집게손가락, 중지에 낀 가조각(假爪角, 뿔로 만든 두겁)으로 13줄의 현을 튕겨 연주한다.
  3. 유녀의 분류 중 하나. 유녀로서 인기는 없지만 기예에 뛰어나 보통 연회에서 게이샤가 없을 때,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거나 하여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하는 유녀들이다.
  4. 장구처럼 생긴 일본의 전통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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