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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64


 

 

 

105 

 

 

 

형도 참 피곤하게 산다.  

 

 

토비라마가 이젠 해탈했다는 듯이 말했다. 창가 옆에 걸터앉아 책을 넘기고 있던 하시라마는 피식 웃었다.  

 

 

......뭐가?  

몰라서 물어?

 

 

토비라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시라마는 말없이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토비라마는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다가 하시라마의 앞으로 의자를 끌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까지 했어야 하는 일이었냐고.  

 

 

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던 짐을 싸들고 집에서 탈출한 날 이후, 집에서는 예상대로 난리가 났다. 귀찮은 것을 질색하는 카토는 아예 메인 휴대폰을 집 안에 던져놓고 다른 휴대폰을 사용했다. 카토의 멘션으로 부츠마의 연락이 계속 왔지만, 하시라마는 첫 번째 전화만 받았을 뿐 그 뒤로는 전화기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 후폭풍을 떠맡는 것은 토비라마였다.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던 카토의 멘션을 몇 번이나 들락거렸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혈압 오르면 어쩌려고 그래.  

그 정도로 쓰러지실 분이 아니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하시라마는 표정 없는 얼굴로 토비라마를 쳐다보다 조용히 말했다.  

 

 

알아.  

 

 

토비라마는 입을 다물었다. 하시라마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평소에는 한없이 부드러워보이지만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무슨 말이든 다 믿어야만 할 것 같았다. 어쩔 때는 아버지보다 더 커 보일 때도 있었다. 토비라마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간 자신만 고래등 싸움에 등 터진 새우 꼴이 날 것 같았다.  

 

 

.......집 나올 것까진 없었잖아. 형 때문에 고생하는 건 나라고.  

.......

형 언제부터 이렇게 감정적이었어? 아버지랑 말다툼 한 번 한 것뿐이잖아. 미토 누나는 또 왜......아, 됐어. 넘어가자. 어쨌든, 이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잖아.

 

 

하시라마는 말없이 토비라마를 응시했다. 토비라마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시라마의 눈은 미동 하나 없었다.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검은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있어야 할 일이 조금 앞당겨진 것뿐이야. 토비라마, 너도 대충은 알고 있었을텐데.  

......

난 의사가 될 거야. 회사는 물려받을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다. 후계자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넌 회사 경영에도 관심이 있고 그쪽 재능은 나보다 뛰어나니까. ......아버지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결국엔 납득하실거야.

 

 

하시라마의 말투는 평소와 다른 것이 없었다. 토비라마는 머리를 벽에 박고 싶어졌다. 형이나 아버지나 어떻게 태도가 이렇게 똑같은 건지. 아니, 토비라마가 보기엔 하시라마가 더했다. 두 사람 다 논리적인 이유를 대고는 있지만 속에는 지금까지 보이지 않게 쌓여온 감정들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언젠가 터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게 이런 방향으로 흐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하시라마의 행동이 뜻밖이었다. 타고난 성격 자체가 온화한 형이다. 터질 때 터지더라도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가거나 인내심을 갖고 설득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설마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올 거라고는.......하시라마의 얼굴을 보니 당장 의절한다는 말이 나와도 꿈쩍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젠장, 애초에 우치하 마다라 그 새끼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병자같은 허여멀건한 얼굴에 음울하기 짝이 없는 눈도 그랬지만 내 위에 사람 없다라고 행동하는 듯한 묘하게 오만한 태도가 제대로 재수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맞고 다닐 때도 그런 태도는 변하질 않았다. 한 번은 복도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녀석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냥 스쳐지나갔을 뿐이었지만 그 때 그 녀석의 살벌한 눈빛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람을 죽여버릴 것 같은 흉흉한 살기는 입가가 피로 물든 맹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녀석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녀석의 그런 눈을 본 것은 그 때뿐이었다. 평소의 모습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아마 본모습은 그쪽에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토비라마는 형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그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붙어다녔던 건지. 아니, 솔직히 친해진 것도 이해가 안 갔다. 같은 반도 아니고, 뭔가 공통분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요즘은 마다라와 함께 다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한 소리 들은 탓인지 다른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긴 했다. 한 가지, 석연치 않은 점만 빼면. 

 

 

.......그러니까, 왜 피해다니는 건데.  

 

하시라마는 창문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책을 보고 있었다. 토비라마는 운동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헝크러진 검은 머리카락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하시라마는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일이 몇 번째인지는 기억도 안 난다. 뭐하자는 거지. 토비라마는 더더욱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졌다.  

 

하시라마는 마다라의 뒷모습이라도 보이면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길 만한 일이었지만 워낙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눈치챈 것은 토비라마 정도였다. 하시라마는 마다라와 얼굴을 마주치는 일 자체를 없애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마다라가 보는 풍경에서 자신이 있는 곳만을 잘라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다라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적어도 토비라마의 눈에는 그랬다. 변한 것은 하시라마 뿐이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다. 싸움이나 말다툼이 벌어졌다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절교를 했다면 더 이상하다. 이미 친구도 뭣도 아니라면 피해다닐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시라마는 계속 마다라를 피해다녔다.  

 

 

마치, 그런 행동이 당연하기라도 한 것처럼.  

 

 

저기, 하시라마 선배. 누가 찾아왔는데요.  

 

 

학생회 소속 1학년이 다가와 우물우물 말했다. 하시라마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검은 코트를 입고 있는 무표정한 소년이 서 있었다. 토비라마는 눈썹을 올렸다. 처음 보는 녀석인데도 묘하게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나? 데자뷰? 순간 뒤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하시라마가 들고 있던 책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시라마는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여진 눈이, 떨리고 있었다.  

 

 

이즈나...... 

 

 

 

 

 

 

 

 

106 

 

 

 

 

바람이 차갑다. 나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던 팔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벌써 겨울이 오려고 하는 건가. 생각해 보면 벌써는 아니다. 이미 11월이다. 달력상으로는 엄연히 겨울에 들어가는 달이다. 자켓을 가지고 나올 걸 그랬다. 마지막 수업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덕분에 도서관에 갈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나는 본관 뒤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욱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점심시간 전까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바로잡기가 힘들어졌다. 넋을 놓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계속되었다. 선생의 말을 들어도 들은 것 같지 않았고, 머리는 여전히 쓰지 않은 공책 첫 장처럼 백지로 남아있었다. 

 

사실은 이런 벤치가 아니라 양호실로 가고 싶었다. 양호실 침대에 누워서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일찍 잠이 들어도 두 세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눈이 뜨였다. 졸렸고 몸이 무거웠지만 잠은 더 이상 자지 못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이나 문제집을 흝어보았다. 어차피 잠을 잘 수 없을 바에는 그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나았으니까. 나는 벤치 위에 놓여있던 너덜너덜한 문제집을 집어들었다. 다섯 번이나 본 책이어서인지 페이지마다 때나 희미한 손가락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나는 그 책을 벤치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지금은 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지친 걸까. 생각해보면 요즘은 하고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빈말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나는 계속 공부만 하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뛰는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접시를 닦거나 서빙을 하면서도 국어문제와 영어단어, 수식들이 복잡하게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카가미 씨는 내가 일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일하는 것에 오랜 시간 적응이 되어버린 탓인지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의 대부분은 그만두었다.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는 이제까지 해 왔던 일에 비하면 일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매일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면 거리를 느긋하게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학교 근처의 서점에 들어가 책을 펼쳐볼 수도 있었고, 이따금씩 있는 번화가 무대의 무료 공연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녀석이 알면, 화를 냈겠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하면 안 된다. 떠올리면, 묻혀 있던 것들이 모조리 수면 위로 올라와 버릴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가슴에 날카로운 바늘들이 꽂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위태롭다, 고 생각했다. 나는 하시라마에 대한 기억들을 지워버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신 나는 그 기억들을 모아 꽁꽁 묶어놓고 묻어버리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 녀석에 대한 기억들은 한계까지 물이 꽉 들어찬 거대한 물풍선과 같았다. 조그만 구멍이라도 난다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게 뻔했다. 나는 내게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 편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내게 하시라마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였다.  

 

 

『난 네가 좋으니까』 

『그렇게 정색할 필요는 없잖아, 진짠데. 난 네가 좋아, 마다라』

 

 

『다 좋아. 얼굴만이 아니라 다.』 

 

 

 

......씨발. 왜 이런 거나 기억하고 있는 거야, 난. 하시라마가 그 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가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손가락이 뇌를 파내기라도 할 것처럼 두피를 파고들었다.  

 

 

 

언제부터.....였지?  

 

 

 

대체 언제부터? 이런 질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묻게 된다. 언제부터? 아니, 사실 진짜 묻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언제부터 날, 그런 눈으로 본 거지?  

 

 

고요한 불꽃이 타오르는 눈동자가 낯설었다. 내 앞에 있던 하시라마의 모습은 처음 대면하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이질적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를..... 처음이 아닌데도 그 말을 떠올리면 속에서 무언가가 확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불쾌함.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어떤 것. 나는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그 녀석은 알고 있을까. 내가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는지.  

정의 같은 건 내리고 싶지 않았다. 우정이니 호감이니 하는 것으로 하시라마와 내 관계를 포장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 그대로가 좋았다. 푸근한 느낌만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그런 상태라면 더 고민할 필요는 없다. 변화가 있는 것은, 싫었다.

 

 

『좋아해』 

 

 

빌어먹을. 이름을 붙이지 않는 건, 경계선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관계에 대한 어떤 정의든 그를 내리는 순간, 그 이름에 붙잡혀 갇혀버리기 때문이다. 그 관계에 맞게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게 그렇다. 위치도 마찬가지다. 우등생이면 우등생답게, 학생이면 학생답게. 나는 그 사실을, 고아원에 들어갔을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걸 이용하는 법 역시 그 즈음에 알았다. 성가시지만, 편리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름은 울타리다. 쓸데없는 문제에 말려들지 않기 위한, 방어선이다.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타인에게 그런 경계선을 만들어 왔다. 

 

 

......왜?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왜, 왜지? 왜 하시라마만 특별하지? 그 녀석도 결국에는 타인이다. 그런데 왜? 왜 나는 하시라마의 사이에 경계선을 치고 싶지 않았던 거지? 아니야,지나친 생각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과장이다. 그 녀석뿐만이 아니다. 이즈나도 그렇다. 카가미 씨도. 하지만 시작은 하시라마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그게 어쨌다고?그건 다 그 녀석 때문이었다. 그 녀석만큼 끈질긴 녀석은 없었으니까.  

 

 

『이번엔......도망치지 마, 마다라.』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렸다. 어디서 들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녀석, 그런 말을 했었나. 도망치지 말라, 고...... 그래, 나는 늘 그 녀석한테서 도망치기만 했다. 하지만,그렇지 않으면 어쩔 건가? 내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나? 그 녀석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외에 내가 무슨 행동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네가, 좋아.』 

 

 

그런 말을, 믿을 수 있을 리 없다. 차라리 말 따위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다. 믿을 수 없다. 나는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나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손에 휴대폰을 든 카가미 씨가, 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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