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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60

 

 

99 

 

 

 

무슨 일인데?  

......

하시라마, 무슨 일이냐니까?! 사람 말 좀 들어!

 

 

 

손에 힘을 주어 떼어내려는 순간, 하시라마는 우뚝 멈춰섰다.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대다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빠르게 했었다면 영락없이 하시라마의 등에 박치기를 했을 것이다. 나는 마른 입술을 할짝이며 하시라마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러는 거지......? 걸으면서 계속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하시라마는 뒤를 돌아보지도, 내 말에 대꾸하지도 않았다. 화가 날 법도 했지만, 왜인지 그런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오늘의 하시라마는 정말 이상했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고개를 돌린 하시라마가 내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홍채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빛을 띠고 있는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런 눈을 하고 있는 하시라마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 

 

 

목까지 올라가 있던 상의의 자크가 한 번에 가슴 아래까지 내려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목을 감쌌다. 하지만 한 손으로 가리기는 어림도 없었다. 헐렁하고 얇은 니트 사이로 초승달처럼 길쭉하게 구부러진 붉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뒷목과 살짝 보이는 쇄골 부분에도 벌겋게 변한 자국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자크를 다시 올리려는 손은 하시라마에게 저지당했다. 나는 하시라마의 시선을 피했다.  

 

 

...... 

......이런 손님도 가끔씩 있어. 이번엔......재수가 좀 없었지만.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아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위험하긴 했지만, 그만큼 수당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점점 나가는 횟수를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시라마에게 조금이지만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이즈나가 신경쓰이기도 했다. 물론 하시라마는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배려해 그 일에 대해서는 가능한 화제에 올리지 않으려고 했고, 내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일이, 한 번만 있었던 게 아니라고......? 

......!

 

 

나는 흠칫했다. 하시라마의 안광은 싸늘했고 서슬퍼런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누구라도 마주치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고 피하느라 바쁠 것만 같은, 그런 눈이었다.  

 

 

지난번에 무리하지 않겠다고 했었잖아.  

.......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을 혹사시키지 못해 안달이야?

.......

널 걱정하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해? 나나 네 동생 심정이 어떨지 생각도 안하는 거야? 이러다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아니, 난 애초에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고....... 꽤 오래 한 일인 만큼 이런 일에서 주의해야 하는 점은 철저하게 꿰고 있었다. 수갑이나 채찍 같은 것들이 동원되는 거친 플레이를 딱히 거부하는 일은 없었지만, 콘돔 없는 상태에서 내가 섹스에 응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콘돔 착용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았지만 그럴 경우는 내가 먼저 잘라버렸다. 섹스 후에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요즘은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런 관리는 제대로 하고 있었다. 대꾸할 말이야 엄청나게 많았지만 정색한 하시라마의 얼굴을 보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걱정......하고 있다. 혹시라도 내게 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시라마는 나를 볼 때마다 위태로워서 내버러둘 수가 없다고 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니다, 그건 아냐. 이번엔 뭔가, 다르다. 나는 하시라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찌푸려져 있는 미간과 날카로운 빛을 띠고 있는 눈매가 보였다. 꾹 다문 입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 있던 얼굴의 힘을 뺐다. 그래.......그렇군. 그런 거였나.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시기가 생각보다 늦었을 뿐이다. 어쩌면 나 때문에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던 것을 쭉 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시라마. 

 

 

혐오스러운 눈길을 받더라도 할 말은 없다. 과정이 어땠던 간에 내가 선택했으니까. 그렇지만 아무리 남창이라는 소릴 들어도, 이건 나에게 일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내 목표을 위해서 했던 일이었다. 욕을 먹을지언정 부끄러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타인에게 몸 파는 새끼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이즈나와 하시라마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고, 내가 힘든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나는.......분명 그 길에서 어긋나 있었다. 그걸 생각하면 미안해서, 얼굴도 들 수 없었다. 나는 하시라마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내가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아. 너한테는 정말 할 말이 없어, 하시라마......싫겠지, 그렇지만......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하시라마는 고개를 저었다.  

 

 

난 네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아, 마다라.  

......?

하지만.......네가 이런 일을 하는 건 싫어. 정말 싫다. 네가 이런 몸을 하고 있는 것도 싫고, 네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게 싫어.

 

 

그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강렬한 섬광이 머리를 뜷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슨......? 하시라마가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검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욱 확대되어 보였다. 그 눈의 검은색이 내 머리의 생각까지 모조리 잠식하고 것 같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니, 이미 그것은 이미 생각이나 예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확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아니야. 아닐 거다. 있을 수 없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럴 리가 없어.......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없어야만 하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입 안이 바싹 말라버린 상태였다. 하시라마는 내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지 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니, 소리치고 싶었다. 하시라마의 입이 열리는 것이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것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시라마의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마다라.......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제길, 말하지 말란 말이야!!

 

 

네가, 좋아.  

 

 

눈앞이 새까맣게 변했다. 숨이 멈춰버렸다고 생각했다. 시야가 암전된 것은 찰나였다. 하시라마의 표정은 조금 진정되어 있었다. 무자비한 고백은 그 녀석에게 더할 나위 없는 확신을 심어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충격을 받은 얼굴인가? 아니면 넋이 나간 멍한 얼굴?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짓말이지,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시라마의 눈을 본 순간 나는 그런 말을 꺼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언제나, 특히 내 앞에서라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하시라마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거짓 따위는, 속마음을 감추려는 베일 같은 것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나와 친해지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던 그 때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이 상황을 부정할 수 있는, 뒤엎을 수 있는 말을 꺼내야만 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너.......미친 거냐?  

 

 

심장을 둘러싸고 있던 유리벽이 파작, 소리를 내며 깨져나갔다. 동시에 그 사이로 성난 폭풍우와 같은 감정들이 콸콸 뿜어져 나왔다. 당혹감과 경악, 그리고 엄청난 배신감이 나를 꿰뜷었다.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의 분노가 뇌를 점령하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 나는 익사할 것만 같았다.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다라...... 

지금이라도 거짓말이라고 말해, 하시라마. 부탁이니까 제발 그렇게 말해.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안다. 하지만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하시라마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바라봤다. 그런 얼굴은 지을 필요 없어. 그냥,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라. 제발. 넌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 늘 장난치던 것처럼, 이것도 그냥 장난이라고 말해. 별 뜻 없이 한 말이라고,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라고 말해. 그 순간에는, 설령 거짓말이라고 해도 그 녀석이 내게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하시라마는 내 소망을 저버렸다. 그 녀석은 내게 거짓말을 하기엔 너무 곧았고, 자신의 마음을 숨길 줄도 몰랐다.  

 

 

미안해, 마다라......하지만, 나는......! 

네가,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내가 널, 어떻게 생각했는데.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사실을 깨닫고 서서히 침묵하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손목을 그어버리는 것보다 더 싫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시라마는 말해주지 않는다. 변하지도 않는다. 철그렁, 끊어진 사슬이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나와 하시라마, 두 사람을 단단히 연결하고 있던 그 사슬이.  

하시라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는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꽉 쥐고 있던 오른손을 내질러 힘껏 그 녀석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주먹에 살이 부딪히는 감각과 함께, 손을 떼자마자 벌겋게 달아올라 있는 하시라마의 뺨이 보였다.

 


 

처음이었어. 

 

 

하시라마는 맞은 방향으로 돌려져 있던 얼굴을 천천히 돌렸다. 힘 조절 없이 때려서인지 뺨은 이미 부어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시라마의 얼굴을 때린 건 두 번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었다. 후회는 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 느끼기에 나를 지배하고 있는 배신감이 너무 컸다. 억눌리지 않은 분노가 목소리에 그대로 배어나왔다.  

 

 

처음이었다고, 네가. 처음으로! 겨우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을,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난......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든,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압착기에 집어넣은 과일이라도 된 것처럼, 가슴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결국 난 너한테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거군. 그런 의미, 밖에는 안 되는.  

아니야, 마다라! 나는......

 

 

입 닥쳐, 하시라마!  

 

 

이렇게 엿같은 상황이 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라앉은 줄만 알았던 몸이 또다시 펄펄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굳어버린 손을 움직여 억지로 눈가를 가렸다. 그 녀석의 얼굴을 보면, 나는 주먹이 나가는 것을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아래로 내린 시야에는 녀석의 흰 운동화가 보였다.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던 가슴이 죄여들었다.  

 

 

넌......날 배신했어.  

......!!

 

두 번 다시 내 앞에 얼굴을 보이지 마. 한번만 더 그 낮짝을 들이댔다간, 소년원에 쳐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널 죽여버릴 거야.  

 

 

나는 하시라마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이 있는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흥건해진 땀이 얼굴을 타고 눈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턱까지 차오른 숨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서 도망치듯이, 절대 잡혀서는 안 된다는 듯이 계속 달렸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시야가 자꾸 흐물거리며 일그러졌다. 나는 연신 손으로 눈을 비볐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울면서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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