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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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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좀 쉬엄쉬엄하지 그래. 퇴원했다고 너무 무리하면 금방 문제가 생긴다고. 

요즘은 별로 그렇게 힘든 거 없습니다.

 

 

 

머그 잔을 들어올리던 카가미 씨가 픽 웃었다.  

 

 

 

그럼, 코에 꽂혀있는 건 뭔데?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필이면 걸어오는 도중에 코피가 나는 바람에 임시로 휴지를 구겨넣을 수밖에 없었다.  

 

 

 

넌 학생이잖아. 본업에 충실해야지. 일은 부수적인 거라고.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예요.

 

 

 

나는 얼마 전까지의 생활을 생각했다. 그 때랑은 비교도 할 수 없지. 이젠 몸에 상처가 날 일도 없었고, 진학 문제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걱정할 일도 없었다. 공부를 게을리한 적은 없다고 자부했기에 진학도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였다. 내가 한숨을 쉬자, 카가미 씨는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너답지 않게 왜 걱정부터 해? 

나다운 게 뭔지 어떻게 알아요......카가미 씨가.

 

 

 

음, 나는 사람을 좀 볼 줄 알거든- 카가미 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카가미 씨와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몇 번 만났었다. 한 번은 길을 가다 마주쳐서 서로 놀란 눈으로 본 적도 있었다. 카가미 씨는 가끔씩 문자로 시간 있으면 차나 마시자고 나를 불러내곤 했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한가롭게 있을 돈도 없는 데다, 마주보고 앉아있어도 괜히 어색한 침묵만 흐르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카가미 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유쾌한 사람이었고, 상대방에게서 말을 끌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카가미 씨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열성적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동생은 잘 지내고? 얼마 안 있으면 졸업한다면서.  

그럭저럭요. 이젠 혼자서도 알아서 잘 하니까요.

어라, 근데 왜 시무룩한 표정이야?

......그런 얼굴 안 했습니다.

 

 

 

카가미 씨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카가미 씨는, 형제 없어요?  

 

 

 

나는 넌지시 물었다. 내가 동생에 대해 말할 때가 많은 것에 비해 카가미 씨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거의 없었다. 사실 말한 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카가미 씨는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은 외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외롭게 크진 않았어. 사촌들이 많았거든. 너도 알다시피......우치하는 혈연이 강하니까.  

 

 

 

카가미 씨는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카가미 씨의 성은 내 성과 같았다. 내가 그걸 안 것은 병원에서 퇴원할 무렵이었다. 그 전에는 간호사들도, 다른 의사들도 모두 카가미 씨를 나처럼 이름으로 불렀기 때문에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지 눈여겨 본 적이 없는 가운 위에는 확실하게 ‘우치하 카가미’라고 수놓여있었다. 처음에는 이름을 보자마자 불쾌한 느낌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카가미 씨는 카가미 씨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그가 가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껄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 탓도 있었다. 묘한......동질감이 느껴졌다고 할까.  

 

 

 

하지만 그 땐 너무 답답했었어. 성가신 것도 많았고.  

 

 

 

답답......? 뭔가 단어 선택이 좀 잘못된 것 같다. 내가 의아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카가미 씨는 한숨을 쉬며 자신은 본가 출신이라고 말해주었다. 우치하 본가라고? 나는 말 그대로 거대했던 저택의 모습을 떠올리며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카가미 씨는 본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도 관련 일에 종사한다고 말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의무적으로 다도를 배워야 하는 모양이다. 카가미 씨는 어딘지 향수가 묻어나는 얼굴을 하며 고등학교 때 가출했다고 말했다.  

 

 

 

다도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었어. 그렇지만, 난 본가 안의 분위기가 너무 싫었어.  

......

뭐라고 할까......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거든.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하다못해 움직이는 것도 조심해야 했어.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반항기가 되니까, 더 이상은 못 참겠더라고.

 

 

 

카가미 씨는 커피가 든 머그컵을 입에 댔다. 반항기......뭔가 전혀 카가미 씨와는 인연이 없는 단어 같은데, 그런 시기도 있었다는 건가.  

 

 

 

지금도 본가에 들어가는 일은 연례 행사가 있을 때나 명절 때 뿐이야. 사실은 그 때도 별로 가고 싶진 않지만, 부모님도 그렇고 본가 어른들의 잔소리는 못 들어줄 지경이거든. 이 때도 안 오면 어쩌냐면서 어찌나 쏘아대는지......  

헤에-

그래서 알게 모르게 내놓은 자식 취급을 받고 있는 중이지.

 

 

 

묘하게 한탄하는 듯한 말투와는 달리 카가미 씨는 무척 개운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보면 볼수록 카가미 씨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모습만 보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귀티나는 남자지만, 말하는 투를 보면 보이는 것과는 달리 매우 밝고 시원시원한 느낌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시라마도 그런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뭔가 종류가 다르다. 청량하고 경쾌한 카가미 씨와 달리 하시라마의 경우는 좀 더 부드럽지만 꾸밈없고 솔직한 편이었다. 게다가 하시라마의 말투에는 그 나이대 학생 같지 않은 무게 같은 것이 있었다. 어느 쪽이든 두 사람 다 호감형인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둘 다......왜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호감이 있고, 잘해준다. 나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당혹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다라? 

아, 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멍하니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카가미 씨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싶었지만, 그는 나를 차분해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카가미, 씨? 

......

왜 그러세요?

 

 

 

따로 할 말이 있으신 건가......? 하지만 내가 무슨 심각한 말을 들을 이유는 없을 텐데. 혹시.....아니다, 아니겠지. 나는 순간 떠오른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속으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마다라, 실은......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 무슨......

 

 

 

놀란 얼굴을 한 나를 보며 카가미 씨는 설핏 웃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다음에 말해줄게.  

 

 

 

 

 

 

 

98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고 했던 거지. 카가미 씨와 헤어져 터덜터덜 걸으면서 나는 온갖 생각을 다 해봤다. 사실 별로 생각할 수 있는 거리도 없었다. 카가미 씨와는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까.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가끔씩 얼굴을 볼 때는 진학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현재 학교생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한 것이 전부였다. 마치 학교에서 상담선생님을 찾아가는 것 같은, 그런 만남이었다. 나는 더 생각해보려다 이내 포기해 버렸다. 어차피 내가 짐작할 수 있을 리도 없고, 나중에 말해 주신댔으니 상관없겠지. 나는 미련을 휘휘 털어버리고는 계속 걸었다.  

 

 

 

아야.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옷이 달라붙은 가슴과 목 부분이 따끔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아서 금방 나아 없어질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제기랄,역시 하는 게 아니었어. 다시 약을 발라야 하나. 점퍼 자크는 목 바로 아래까지 올려져 있었다. 조금이라도 자크가 내려가면 분명 보기 흉한 것들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젠장, 신경 쓰지 말자. 신경 쓰지 않으면 돼.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멀찍이서 다가오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하시라마? 

 

 

 

흰 색 와이셔츠에 긴 머리, 틀림없이 하시라마다. 나는 의아한 눈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 하시라마를 바라봤다. 평소라면 분명 먼저 인사를 할 텐데, 지금은 내가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하시라마! 

 

 

 

하시라마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넋을 놓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귀는 열려 있었나 보다. 나는 손을 크게 흔들었다. 정면에 있는 나를 발견한 하시라마는 멍 때리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쿡쿡 웃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시라마가 저런 얼굴을 하다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넋 빠진 얼굴로 뭐 하는 거야?  

......넌 여기서 뭐하는 건데?

약속이 좀 있어서......지금은 집 가던 중.

 

 

 

나는 순간 하시라마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감지하고 멈칫했다. 평소와는 다른, 기묘한 위화감이 하시라마의 주위에 흐르고 있었다. 

 

 

 

너......무슨 일 있었어?  

 

 

 

하시라마의 눈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는 가만히 서서 나를 관찰하듯이 시선을 움직였다. 나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하시라마에게 내 몸 안이 보일 리는 없는데도, 목덜미와 가슴 부분을 가려야 할 것 같았다. 상자를 뜯어보는 것 같은 조용한 눈동자는 기분 나쁘다는 감정보다는 부끄러움과 불안함을 일게 했다.  

 

 

 

잠깐 얘기 좀 하자.  

 

 

 

갑작스럽게 와 닿은 손목의 체온에 당황해할 새도 없이, 하시라마는 나를 끌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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