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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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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말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음울하고 어두운 기억들이 대부분이었던 데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족족 파고들어오는 반갑지 않은 잔상들 때문에 잠깐 멈추기도 했지만, 하시라마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내 말에 완전히 집중해 경청하고 있던 하시라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화가 단단히 난 듯한 눈을 날카롭게 빛내기도 했다. 이즈나의 사고에 대한 말을 들었을 때, 하시라마의 눈은 분노로 떨렸다. 우치하 타지마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우치하 타지마와의 거래와 고등학교에서 숨죽이며 힘겹게 살아야만 했던 생활. 꼬일 대로 꼬인 혈연관계의 전후사정을 알게 된 하시라마는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미안해, 마다라.  

 

 

하시라마는 무척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대회가 있던 날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네가 사과를 왜 해.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는 목이 거의 쉬어 있었다. 말할 때마다 거친 목소리가 가닥가닥 끊겨 나왔다. 그나마 있던 기운까지 말하느라 빠져나간 느낌이었지만 속은 후련했다. 이제야,가슴이 좀 편안해진 것 같았다. 마음 놓고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시라마를 쳐다봤다. 하시라마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하는 것도 같았고 기뻐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하시라마는 내 말을 다 듣고 나서도 뭔가 더 묻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더 숨길 것도 없었다. 나는 하시라마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말했다.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하시라마를 보고 나는 무슨 질문이 나올지 예상할 수 있었다.

 

  

사실이야.

......!

처음에는, 그런 게 아니었지만......결과적으로는 내가 선택한 거야. 매일 상처나 멍만 달고다니는 녀석을 누가 오래 쓰려고 하겠어? 내가 인상이 좋은 편도 아니고 말이야. 안 그런 곳도 있긴 했지만, 너무 적었거든.

......

벌이로만 치면 나쁜 것도 아니었고......의외로 나같은 녀석 좋다고 달려드는 놈들도 많았으니까.

 

  

이런 화제를 꺼내고 싶진 않았지만 말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하시라마는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얼굴은 아니었다. 하시라마는 동생이 말해줬다고 했다. 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비싯 웃었다.

 

 

나한테서 떨어지라는 얘기는 안 하든?

.....! 그건......

유감스럽게도 그 말은 틀린 게 아냐, 하시라마. 나하고 있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건 사실이야.

 

 

나는 가능한 담담히 말하려고 노력했다.

 

 

같은 고등학생이어도, 너하고 나는 있는 위치가 달라. 사는 세계도 마찬가지고.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녀석이 아냐.

......

도련님은, 도련님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는 거야.

 

  

가슴이 욱신거렸다.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친해지기 전에도 이런 말은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았다. 명치 바로 밑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사실은 계속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함께 놀 때마다 좀 더, 조금만 더 나중에 이야기하면 된다고 말하는 자신이 있었다.

 

나는 하시라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저 눈을 더 지켜보다간, 진심을 말해버릴 것 같았다.  

 

거짓말.

.....!

뭐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하는 건데?

뭐?

타지마 씨? 네 동생? 아니면 내 동생 때문이야? 그것도 아니면......나 때문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할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빌어먹을, 그걸 질문이라고 해. 하시라마는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언제나 온기가 흐르는 눈동자에는 그늘이 져 있었다.

 

 

만약 날 위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거절하겠어.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어, 마다라.

 

  

하시라마는 딱 잘라 말했다.

 

 

......귀찮은 일은 충분히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상관없어. 그리고, 널 이런 상태로 내버러둘 수 있을 리 없잖아.

......

널 좀 봐, 마다라. 네 얼굴을 좀 봐. 넌 지금 만신창이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고.

    

 

 

하시라마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걷어냈다. 정교한 조각품을 쓰다듬기라도 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내 얼굴의 상처를 보는 하시라마의 검은 눈은 떨리고 있었지만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네가......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널 돕고 싶어. 더 이상은 혼자 끌어안고 괴로워하지 마. 내가 조금이라도 널 도울 수 있게 해줘.

 

나는 대답 없이 하시라마를 쳐다보다 나지막히 물었다.

 

 

  

왜 나한테......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하시라마의 입가에는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네가 좋으니까.

......?!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본 하시라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자식이 지금 날 놀린 건가?

 

 

그렇게 정색할 필요는 없잖아. 진짠데. 난 네가 좋아, 마다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우물대고 있는데 병실 문이 부서질 듯이 세게 열렸다. 하시라마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드디어 왔군- 하고 중얼거렸다. 화재현장에서 탈출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들어온 그 사람은 곧장 내가 앉아있는 침대 쪽으로 달려왔다. 언제나 하나로 묶여 가지런히 놓여 있는 머리카락이, 태풍이라도 맞은 듯 흐트러져 있었다. 핏기 없이 하얗게 질려 있는 얼굴은 금방이라도 기절할 사람처럼 보였다.

 

 

이즈나......!

 

거친 숨을 몰아쉬던 이즈나의 눈이 내 머리의 붕대와 관자놀이 부근에 붙여져 있는 거즈에 닿았다. 홀린 것처럼 침대 위에 놓여있는 내 손을 붙잡은 이즈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놀라 이즈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즈나! 이즈나, 왜 그래?

......

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부러진 데도 일단은, 없는 것 같고......

미안, 미안해......형.

 

 

이즈나는 시트에 머리를 묻은 채,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나는 영문도 모른 채 이즈나를 달래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 발짝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하시라마는 자신은 빠져주겠다며 손을 흔들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던 하시라마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너 적어도 일주일은 입원해 있어야 한다니까, 무리하지 마.

일주일이나? 야, 잠깐만.....!!

튈 생각 하지 마. 제대로 치료 받고 있나 매일 확인하러 올 거니까. 약속했다?

 

 

하시라마는 빙긋 웃으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망연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던 나는 시선을 내려 이즈나의 머리를 어색하게 쓰다듬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가 다른 의미로 아파오려고 했다. 일주일......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르바이트 땜빵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했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사라진 줄 알았던 졸음이 스물스물 목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어버릴 때까지, 이즈나의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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