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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52


 

86 

 

 

꿈을 꿨다. 눈이 내리던 밤, 가로등 아래에 앉아 있는 꿈이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눈썹에 맺힌 물방울이 바로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였다. 열 손가락, 운동화에 보호받는 열 발가락이 모조리 동상에 걸릴 것 같았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도 별 아픔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 때, 나는 울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내게 한 사람이 다가왔었다. 안쓰러운 눈길로 나에게 손을 뻗던, 검은 눈동자의 소년. 그 소년은 나를 차가운 바닥에서 일으켜 주려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소년의 손을 뿌리쳤었다. 등을 돌리고,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었다.

 

그 때, 그 소년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그 때 뒤를 돌아봤다면, 그 소년은 내게 뭐라고 말했을까? 

 

 

 

 

 

 

87 

 

 

예. 그렇게 해 주세요......네, 그럼.  

 

 

하시라마의, 목소리다. 나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아직 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던 나는 순간 눈을 번쩍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이불의 감촉이 느껴졌다. 여긴......어디지?  

 

 

누워 있어.  

 

 

어느새 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온 하시라마가 내 어깨를 눌러 다시 자리에 눕게 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넓은 방 안에는 일일히 바느질로 수를 놓은 것 같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커튼과 비슷한 장식의 쿠션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소파 하나가 있었다. 나는 블라인드를 내린 창문 옆의 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런 장소는 본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내가 이런 곳에 올 일도 없었겠지만.

 

 

 

......여긴 어디야.

병원이야.

 

 

 

침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으며 하시라마가 짧게 대답했다. 병원......? 그럼 여긴 병실이란 소린가? 나는 다시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아는 병실은 이렇게 크지도 않았고, 침대가 하나만 있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이런 사치스럽게 보이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하시라마는 소파 옆의 작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유리컵에 물을 따라 내밀었다. 내가 컵을 받아들자 하시라마는 이곳이 코노하 대학병원이라고 말해주었다. 코노하......덮고 있는 이불 가장자리에는 매일 교문 앞에서 봤던 익숙한 표지가 작게 인쇄되어 있었다. 걸리적거리는 느낌에 얼굴과 목 밑부분을 더듬자 약을 발랐는지 끈적거리는 불쾌한 느낌과 함께 까슬까슬한 거즈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마 위로 손을 올리자 머리에는 미이라처럼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었다.

 

 

 

열다섯 바늘을 꿰맸어. 네가 기절해 있는 동안.

 

 

 

하시라마는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뒷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붕대 속에 감춰져 있는 그곳에서는 잡힐 듯 말 듯한 희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뎅뎅 울리는 것 같은 머리에서는 기절하기 전까지 있었던 일들이 뒤죽박죽으로 마구 재생됐다. 두꺼운 쇠못이 머리에 박히는 것 같은 두통이 나를 강타했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며 이마를 감싸자, 하시라마가 가까이 다가서며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으윽......

넌 더 쉬어야 돼. 자.

 

 

이미 아픔 때문에 잠은 달아나 버린 지 오래였다. 나는 약하게 숨을 뱉으며 휴대폰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어떻게든 치료가 끝났으니 여기에 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세 시간은 의식을 잃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이즈나가 집에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다. 안 그래도 방금 전의 전화 때문에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돌아오지도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아이의 성격상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은 상태일 것이다. 제길! 대체 어디 있는......


 

 

『형!! 어디 있었던 거야? 대체 무슨 일이냐고!! 제기랄, 휴대폰은 왜 들고 다녀? 나 정말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이즈나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다 하시라마가 내 휴대폰을 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멍해졌다.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던 하시라마는 평소같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다라 동생이니? 

 

 

휴대폰에서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조금 전의 다급한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누군데 우리 형 전화를 갖고 있는 겁니까?』

난 마다라의 친구야.

『친구, 라고요?』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반문했다. 하지만 하시라마는 별 반응 없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긴 코노하 대학 병원이야. 지금 바로 이쪽으로 좀 와 주겠어? 가능한 빨리 와 줬으면 좋겠는데.  

『?!! 병원이라고요?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설마......』

마다라가 좀 많이 다쳤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미 치료는 다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

『......알겠어요. 금방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하시라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에게 휴대폰을 넘겨주고는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하시라마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띤 얼굴로 하시라마를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과 불편함을 느끼며 하시라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지?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하시라마는 전부 보았다. 피에 절여진 야챠처럼 광기에 휘둘리고 있었던 나를 보았던 것이다. 그 때 제정신이 아니었던 내가 그를 붙잡고 지껄여댔던 말들을, 그는 분명 하나 하나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시라마는 내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게 보여왔던 모습처럼, 평온한 말투로 쉬라는 말을 하고 내 위로 이불을 덮어 나를 다독여 줄 뿐이었다. 마치 그것만이 자신의 역할이기라도 한 것처럼.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 건가? 더 이상은 간섭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가? 내게서, 한 발짝 물러서 있겠다고 결정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어째서인지 가슴 한 쪽이 꽉 죄어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녀석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 없어.

......!

네 동생이 금방 올 테니까, 난 나가 있을게.

 

 

하시라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하시라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을 옮기는 소리가, 유난히 크고 또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 하시라마를 부르려고 했다. 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하시라마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

 

 

......하시라마!

 

 

왜인지는 모르겠다. 저 녀석에게 말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말하고 싶었다.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항상 단정했던 하시라마의 얼굴에 나 있는 옅은 초록색의 멍자국과 눈 밑에 난 상처가 보였다. 상처의 아픔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던 하시라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희망을 품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이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을 거다. 이 녀석이라면. 만에 하나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할 말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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