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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15


 

26

   

 

그 후로 나는 공부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았다. 예전만큼 아르바이트가 빡빡하지는 않았던 탓에 학교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갈 때까지는 시간이 꽤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힌 채 책과 필기에 파묻혀 살았다. 하루가 너무 짧았다. 공부를 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바깥은 벌써 어스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정신적 노동에 지친 머리와 몸에 휴식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나와야 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가방에 쑤셔넣다가 팔에 난 멍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시퍼렇다고 표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짙게 들어있던 멍은 이제 서서히 푸른 빛을 띠는 옅은 노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가운데에 들어있는 붉은 자국만은, 없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코피가 터지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도 피로는 이제 조금이나마 적응이 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되지도 않는 가면을 쓰지 않았다. 성적을 가지고 장난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목표가 생긴 이상, 조금이라도 번거로움을 주는 요소는 폐기해야 했다. 나는 지금까지 점수를 떨어뜨렸던 시험에서 모조리 상위권을 꿰차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어떤 시험에서도 전교에서3등 이내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2학년 2학기, 나는 기말고사와 모의고사에서 모두 최상위권의 성적을 거두었다. 선생들은 드러내놓고 칭찬하진 않았지만, 복도나 교무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흐뭇한 눈길을 내게 주곤 했다. 선생들의 관심을 받아서인지 최근에는 린치를 당하는 일이 꽤 줄어들어 몸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도.

   

 

 

.....큭!!

젠장, 이 새끼 갈수록 재수없네.

관둬. 선생들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재미없어진다고.

   

 

머리 위에서 짜증스러움이 역력한 목소리가 말했다.

   

 

선생은 무슨 선생이야. 그딴 샌님들이 뭘 안다고.

안 그래도 이번에 총학생횐지 뭔지 때문에 단속 심해졌잖아, 새끼야. 적당히 하고 끝내.

알았으니까 좀 5분이라도 닥치고 있어......아오!

   

 

퍽.

   

 

힘껏 걷어차인 허리와 등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주변 근육이 경련하는 듯한 통증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를 신나게 때리던 녀석은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통쾌한 듯이 말했다.

   

 

그래도......이 새끼를.......헉......패는 건.......못 그만두지.

때릴 맛이 난다니까, 이 새끼는. 하여간 이 새끼도 독해. 비명이라도 지르면 불쌍하게라도 보이니까 좀 덜 때릴지도 모르는데.

   

 

누군가의 발이 내 머리를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점점 무게를 싣는 발길은 내 머리를 부숴버리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압박감과 고통에 낮은 신음을 삼키며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올려 위를 쳐다보았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발과 몸들 비좁은 틈으로 보이는 것은, 거의 짙은 보라색으로 변해 있는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깜빡거리며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는 가로등이 있었다.

   

 

똑같은, 풍경.

대체 몇 번이나 반복되어 온 걸까.

   

 

지금까지 얼마나 이 풍경을 봤던 걸까.

얼마나......?

   

   

나는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여 그 발이 있던 자리에서 머리를 빼냈다.

   

 

어, 이 새끼가 피해?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이미 머리카락은 흙과 모래투성이였고 맞다가 긁힌 건지 이마에 상처가 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누가 보면 엉망진창이라고 할 만한 꼴이었지만, 내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맞다 보면 맷집은 알아서 늘게 된다는 건 사실인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바닥에 던져져 있던 가방을 집어들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쪽 골목으로 뛰었다.

   

 

헉.......헉.......

   

 

숨을 쉬는 게 아프다. 미친 듯이 내달린 탓에 긴장과 구타로 경직되어 있던 몸이 비명을 질렀다. 다리에서 쥐가 나 넘어질 뻔하기도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큰 거리를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섞여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아윽.....!!으......

   

 

잠시 숨을 고르고 달리려던 나는 척추를 타고 흐르는 날카로운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은 마비라도 되어버린 듯이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아직 도서관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이었지만, 앞을 보니 골목의 끝을 알리는 표지판과 함께 커다란 사거리가 펼쳐진 번화가가 보였다. 몇 걸음만 더 나가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이 지긋지긋한 골목에서.

   

 

나갈 수 있어.....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힘이 빠진 채 지친 몸을 벽에 기댔다. 번화가의 입구에 있는 하얀 네온사인의 불빛이, 내 눈을 따갑게 했다.

   

 

정말, 나갈 수 있나?

   

 

나는 약하게 숨을 내쉬며 가방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상처가 난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무엇에서?

   

무엇에서든.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금만 쉬고 싶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5분 만이라도, 이렇게 있고 싶었다. 나 같은 놈한테는 그런 것도 허락되지 않는 걸까? 그냥 가만히 있고 싶은 것뿐인데.

   

 

도망칠 수 없다.

   

 

나갈 수 없다.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이 빌어먹을 게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 따위는 없었다. 지금 운 좋게 빠져나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금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지나면 모레, 글피. 그리고 계속되는 이 일상. 사지가 묶여버린 채, 숨을 죽이고 있어야 하는 매일. 그 여자와 보냈던 날들보다, 나를 숨막히게 하는 이 감옥.

   

 

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 걸까.

얼마나?

대체 얼마나?

   

여기에 끝이 있기는 한 건가?

   

 

나는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뇌가, 가슴이, 끓어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자칫해서 눈을 떠버리기라도 하면,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시한폭탄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어버릴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고,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고 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죽여.

죽여.

죽여버려.

   

 

돌아버릴 것 같았다. 맞고 있을 때도, 맞지 않고 있을 때도 억눌린 마음은 계속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눈을 감아도, 귀를 틀어막아도, 누군가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른다.

   

 

죽여.

죽여!!

   

 

붉은 색의 커다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살의로 점철된 붉은빛이 위험하게 번뜩이고 있다. 쇠창살 안에는 야수가 있었다. 울부짖으며 감옥에 머리를 부딫혀대는 야수가 있었다. 자물쇠는 오래 전에 망가져 있었다.

   

 

저건, 나다.

   

저 창살에 한 번이라도 더 부딪힌다면, 분명 저 감옥은 부서져버리겠지.

   

 

죽이고 싶다. 누구든 죽여버리고 편해지고 싶다. 이 슬픔을, 고통을. 날 미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설령 누군가를 죽여버리더라도, 내가 편해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잊게 만들 수만 있다면.

   

 

안 돼.

안 돼.

절대로........안 돼.

   

   

   

이즈나.

   

 

나는 눈을 감고 기도하듯이 중얼거렸다.

   

제발 나를 계속 저 감옥에 가둬 줘. 그냥 그렇게 있으라는 말만 하면 돼. 그럼 어떻게든 버텨 낼 테니까.

만약 네가 말해준다면 살을 물어뜯어서라도, 팔다리를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버텨 내겠어.

   

 

너를 위해서라면.

   

 

너를.......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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