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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무제


 

 

 

춥다.

 

 

 

춥다, 추워.......씨발! 왜 이렇게 날씨는 춥고 지랄이야! 마다라는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숨기려고 애썼다. 아무리 손을 깊게 집어넣어도 손등 윗부분부터 니트 소매가 있는 손목 위까지는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염병할.

 

오늘은 왜인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았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인가 뭔가로 계절이 어딘가 이상해진 탓인지 지겹게도 비가 많이 왔다. 덕분에 마다라는 지난 주 내내 원치 않는 방콕 생활을 해야 했다. 원래 방에만 짱박혀있는 성격도 아니건대 멍하니 비가 오는 창문만 바라보고 있으니 썩어가는 곰팡이가 된 느낌이었다. 여긴 설마 도쿄가 아니라 런던인가 싶었다. 그러다 실로 오랜만에 맑은 날이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무려 주말, 그것도 토요일이다!

마다라는 쾌재를 부르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동안 못 간 서점도 좀 가고, 산책도 하고, 인터넷에서 찾아만 두고 가지 못했던 맛집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계획은 매우 거창했다. 그래, 그것까진 참 좋았다. 문제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집에서 뒹굴던 복장 그대로 달려나왔다는 것이었다.

낡아서 물이 다 빠진 청바지와 니트 한 장만 달랑 걸친 채로.

 

 

 

밖으로 나온 지 10분이 지났을 때, 마다라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는 늦가을. 아무리 날씨가 더워지고 여름이 길어졌다곤 하지만 시기상으로 보면 초겨울이라도 해도 좋은 시점이었다. 물론 햇살은 따사롭고 하늘은 파랗게 빛났다. 그러나 겨울의 입김이 들어간 바람은 지나가는 사람 싸다구를 후려갈기는 것처럼 매서웠다. 마다라는 덜덜 떨면서 일단 집으로 들어가서 뭐라도 걸치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가 있을 줄 알고 주머니 속에 넣은 오른손에는 쭈그러든 자일리톨 껌과 동전 몇 개밖에 나오질 않았다. .......씨발. 마다라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아무리 들떴다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병신도 이런 상병신이 없다.

 

마다라는 할 수 없이 양 팔을 손으로 문지르며 걸었다. 가만히 있으니까 더 추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갑을 챙겨 나왔다는 거였다. 가까운 카페라도 들어갈까 싶었지만 오늘따라 한적한 카페가 눈에 띠지 않았다. 어느 카페나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미친 놈들, 주말이면 집에나 처박혀 있을 것이지 왜 기어나와서 지랄이야. 마다라는 얼굴을 구기며 계속 걸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전부 외투나 잠바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다. 심지어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도 간간히 보였다. 그걸 보고 있으니 더 추워졌다. 정면에서 오는 바람을 얻어맞은 마다라는 더 가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피했다. 바람이 가라앉으면 다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유리로 된 방어막이 있으니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

 

 

 

마다라는 주머니 속에 있던 손을 꺼내 비볐다. 제길, 그래도 춥다. 문득 회사에 있을 하시라마가 떠올랐다. 얼굴 본 지 얼마나 됐더라. 못 돼도 일주일은 넘은 것 같다. 요즘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전화할 때마다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끊어버리고, 만나자고 하면 야근해야 한다며 거절하곤 했다. 어제도 전화를 했지만 불통이었다. 개새끼. 부재중전화를 확인했을 텐데도 지금까지 연락이 없었다. 마다라는 갑자기 울고싶어졌다. 명색이 애인이란 새끼가 눈치는 밥 말아먹은 놈이다. 사귀기 전에도 그런 건 알고 있었지만-아마 고백을 안 했으면 그 새끼는 자신을 연애대상으로 보지도 않았을 거다-, 사귀고 나서도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그 새끼가 날 좋아하기는 하는지 모르겠다. 얼떨결에 한 고백을 받아들였을 때는 뭔가 달라지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설렜었는데......개뿔, 기대를 왜 했나 싶다. 이래서는 사귀기 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 아, 섹스가 있긴 하군......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진다. 생각해보니 정말 섹스밖에 없다. 사귀기 전에도 친구라는 이유로 붙어있을 때가 많다 보니 할 건 다해봤다. 사고였지만 키스도 했었고, 둘 다 진탕 취한 상태로 섹스 직전까지-물론 내가 유혹을 하긴 했다- 간 적도 있었다. 이거 생각할수록 개새끼다. 사귀자고 했을 때 OK했으면, 이전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새끼 때문에 마음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찌릿거릴 것 같다. 눈치라곤 없는 그 새끼는 알기는커녕 신경도 안 쓰겠지만.

 

오늘 같은 날도 연락 좀 해주면 덧나나?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날씨도 좋고, 둘 다 휴일이고, 시간도 있는데. 몇 일 기념이라든가 뭔가로 불러낼 수도 있을 거 아닌가. 머리 없는 새끼도 아닌데 왜 그런 건 생각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일할 땐 생기가 아주 흘러넘치는 주제에. 일하는 만큼 애인한테도 신경을 쓰란 말이다! 제기랄, 먼저 반한 놈이 죄지. 그런 놈 좋다고 반한 내가 병신이야.

 

 

 

진짜 추워 죽겠네.......씨발.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다라는 무릎을 의자 위로 올려 웅크려 앉았다. 몸을 움츠려도 훤히 드러난 목으로 숭숭 들어오는 바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번 년은 어떻게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독감 한 번 제대로 걸리게 생겼다. 몸도 춥지만 마음도 춥다. 마다라는 하시라마를 욕하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하시라마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일주일에 걸친 잔업처리를 마무리짓고, 급하게 뛰어나오던 참에 그는 무척이나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 긴가민가하면서도 가까이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내내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연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척추뼈까지 들여다보이는 얇은 니트 사이로 흰 목덜미가 눈에 박혔다. 마다라의 활동적인 성격상 이런 날에 집에 있을 가능성이 낮긴 했지만, 이렇게 옷도 제대로 안 입고 나올 줄은 몰랐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입가가 꿈틀거렸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저렇게 입고 나올 날씨는 아닌데. 얼마나 저러고 있었던 거지? 바로 옆까지 가도 마다라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가늘게 떨리고 있는 마다라의 어깨를 본 하시라마가 겉옷을 벗으려는 순간, 마다라가 고개를 들었다. 마다라는 겉옷을 걸쳐주려는 하시라마의 손을 날카롭게 뿌리쳤다.

 

 

 

마다라? 그렇게 있다간 감기 걸려.

남이사 감기가 걸리든 말든 신경 끄시지. 스페어 키나 내 놔.

 

 

 

마다라의 눈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하시라마는 그런 마다라의 모습에 놀랐지만 일단 스페어 키를 꺼내 건네주었다. 마다라는 키를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하시라마에게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마다라, 기다려!

......

마다라!

시끄러워, 입 닥쳐!

 

 

뒤돌아보는 마다라의 얼굴에는 싸늘한 빛이 들어 있었다. 하시라마는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싶었다. 만나면 혼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화가 나 있을 줄은 몰랐다. 지은 죄가 있으니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하시라마는 다시 몸을 돌리려는 마다라를 재빨리 붙잡았다. 이럴 때는 그냥 닥치고 사과를 해야 한다.

 

 

 

미안하다. 전화 못해서......

 

 

 

사실 전화를 할 수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마다라에게 너무 미안해서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일 때문에 만나지도 못했는데, 전화까지 못 받았으니 할 말이 없었다.

 

 

 

너 나랑 왜 사귀냐?

어.....?

이전이랑 다른 게 하나도 없잖아! 너 나 좋아하긴 하는 거냐?

마다라.....

항상 나만 애태우고 있어! 네가 너한테 사귀자고 했을 때 씨발, 어떤 기분이었는 줄 아냐? 네가 고백 받아줬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알아? 매일 나만 전화하고, 문자하고......이럴 거면 나랑 왜 사귀는 거냐? 내가, 내가 얼마나.......

 

 

 

그 순간 하시라마의 입술이 마다라의 입술에 겹쳐졌다. 놀란 마다라가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마다라의 몸은 이미 하시라마에게 완전히 안겨 있었다. 한참 후가 지나고 나서야 하시라마는 마다라에게서 입을 뗐다. 하지만 여전히 마다라를 끌어안은 채였다. 마다라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자 하시라마는 마다라를 더 세게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난 널 좋아해, 마다라.

......!!

좋아한다니까? 정말 좋아해. 좋아해, 마다라......

 

 

 

하시라마는 마다라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보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사귀기 전에도 그랬지만 ‘좋아한다’는 말에 이렇게 약한 사람은 처음 봤다. 이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마다라가 안다면 분명 미친놈이라며 더 화내겠지만.......아아, 화내는 모습도 귀여워서 미칠 것 같다. 귀엽다. 정말로......귀여워.

 

 

 

개새끼. 또 이렇게 넘어가려고.......

미안해, 마다라. 일주일 분은 오늘 다 벌충할테니까, 그걸로 봐 줘.

......

안 될까......?

 

 

 

마다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런 얼굴을 할 때면 열에 아홉은 못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을 잔뜩 붉힌 채, 투덜투덜대기는 하지만 말이다. 분명 속으로는 좋아하는 자신만 손해라며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하시라마는 입을 다문 채 서 있는 마다라를 바라보다 뺨에 살짝 키스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멍해져 있던 마다라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다. 저러다 목까지 빨개지는 거 아닌가 싶다. 예상한 반응이긴 하지만, 그래도 귀엽다.

 

마다라는 자신이 나를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글쎄, 내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도 않다. 마다라도 그렇게 건전한 생각을 하면서 나를 보지는 않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마다라를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진다. 아까도 처음 봤을 때부터 키스하고 싶었다. 아니.......솔직히 말하자면 목덜미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안아버리고 싶었다. 지금도, 안고 싶다.

 

 

계속 바람이 불어 더 추운지 마다라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콜록거렸다.

 

 

 

마다라, 오늘은 그냥 집에 가자.

......벌충한다며.

같이 가자는 거야. 저녁 같이 먹자. 내가 만들어줄게.

 

 

 

저녁을 만들어준다는 말에 마다라가 놀란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하시라마는 슬슬 위험해진다고 생각하며 부드럽게 웃어보였다. 유부초밥을 만들어주겠다고 하자, 마다라는 조금 만족한 건지 눈에 작은 미소를 띄웠다. 마다라에게 겉옷을 벗어주자, 이번에는 순순히 어깨에 걸치고는 팔까지 소매 안에 집어넣는다. 내 옷을 입고 있는 마다라는 어른 옷을 입은 아이처럼 보였다. 따뜻하다는 듯이 외투에 뺨을 문지르는 마다라를 보면서 하시라마는 한숨을 쉬었다. 집에 갔을 때 자제할 자신이 없었다. 마다라도 같이 집에 가니 예상을 안 한건 아니겠지만, 생각보다 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심할 것 같다. 일주일간 금욕을 했으니......하시라마는 고개를 흔들며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옆에서 걷고 있는 자신의 연인은 이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모르겠다. 하시라마는 피식 웃었다. 알 리가 없지. 그는 내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편이 좋다. 그의 귀여운 모습을, 계속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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