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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二十五





二十五

 

 


生不識人面 평생에 다른 사람 아는 이 없어

長年在深屋 오랜 세월 깊은 방에 있었지요

一爲色所誤 한 번 내 신세가 잘못되어서

返遭珉欺玉 옥돌을 옥인 줄 알고 속았지요1

 


초여름의 햇살이 나무 창살 사이로 흘러들어왔다. 빛은 방 가운데에 깔려 있는 이불을 지나 그 옆 벽에 기대고 있는 남자의 얼굴에도 내려앉았다. 얼굴을 찡그리며 남자는 햇빛을 피해서 자리를 창문 옆으로 옮겼다. 그가 방금 전까지 기대고 있던 벽 구석에는 오래된 듯 했으나 명도(名刀)처럼 보이는 검과 그보다 짦은 검 두 자루, 짚으로 촘촘히 엮어 만든 삿갓과 겉옷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남자는 건조한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낮의 사쿠라마치는 죽은 마을이다. 이 개같은 마을은 밤에만 생명을 되찾아 환한 불을 밝혔다.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살짝 좁히며 생각했다. 어차피 밤이 될 때까지는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몸을 쉬게 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었다.

 


“형, 저 왔.....ㅡ히익!!!”

 


갑작스레 문이 열고 들어온 소년이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남자는 반사적으로 뽑아들어 던지려 했던 쿠나이를 조용히 내렸다.

 


“간 떨어질 뻔했잖아요, 나리. 문 열자마자 보이는 곳에 그렇게 떡하니 앉아 있으면 들어오는 사람이 놀란대두요.”

 


꽤나 화려한 자색의 유카타를 입은 소년은 투덜거리며 들고 있던 소쿠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남자는 이젠 나름대로 익숙해진 얼굴의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이곳으로 숨어들었을 때 만난 소년ㅡ요우키는, 자객이나 다름없는 차림새를 한 자신을 보고도 무서워하기는커녕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더랬다. 가는 곳마다 적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던 자신이지만, 어쩐지 이 소년은 자신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 방의 주인과 마찬가지로.

 


“......마ㄷ......ㅏ라......?”

 


어느새 노래를 멈춘 나가토가 그, 마다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요우키는 놀랍다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리, 형이 나리 온 거 알아봤나 봐요! 신기하네. 지난번에도 그렇고. 보통 이런 일 잘 없는데...... 형이 이런 반응 보이는 건, 쇼히가 왔을 때 정도거든요.”

“......”

 


남자는 말없이 병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들어있었다. 마다라는 소쿠리 안에 있던 수건을 집어 더러워진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요즘 형 상태를 보니까 좋아지려나 봐요. 얼마 전에도 이것저것 물어보면 꼬박꼬박 잘 대답하던데. 나리가 있을 때도 그래요? ......다카오 형, 내 말 들려요?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그 나리라는 말, 안 쓸 수 없나? 난 유곽 손님이 아니다.”

 


병자의 머리를 정리해주고, 다리와 팔을 닦던 요우키는 고개를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치만 뭐라고 부르면 될지 모르겠다구요. 지난번에 이름으로 불렀을 때는 별로 안 좋아했잖아요?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이상한 나리야.”

“그냥 적당히 불러라. 평범한 거 많잖아.”

“음......그럼 아저씨로!”

 


소년은 뭐가 좋은 건지 싱글거리며 웃었다. 뭐라 부르든 아무래도 상관없긴 했지만 조금 어이가 없었다. 스물 다섯도 안 된, 혼인도 하지 않은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다니.

 


“다카오 형이 있는데 나리까지 형이라고 부르면 헷갈리잖아요. 그리고 그런 얼굴만 보여주니까 더 아저씨 같다구요. 왜 멀쩡한 얼굴은 가리고 다녀요?”

 


요우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마다라를 쳐다보았다. 평소에 꽁꽁 싸매여 복면 속에 숨겨져 있던 얼굴이 오전의 햇살에 비쳐 드러나고 있었다. 칼로 난자당한 듯 길고 짧게 베인 상처들로 덮인 한쪽 얼굴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도 않은 것인지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물어 군데군데 울퉁불퉁 튀어나온 부분이 보였다. 반대쪽 얼굴은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턱과 가끔 보이는 뺨이 말끔한 것으로 보아 상처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얼굴은 흉터투성이인 부분뿐이라 험상궂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다라는 대답 없이 요우키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아 병자의 몸을 마저 닦았다. 몸 곳곳에 피어오른 발진과 썩어들어가는 몸을 보고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보다 더 끔찍한 시체도 본 적이 있었지만, 시체는 그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런 몸으로 살아 있다는 것은 시체가 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었다.

 


“ㅋ....ㅤㅣㄴ쇼......우......”

“......킨쇼우?”

“나 참, 또 그러네. 아무리 쇼히가 보고싶다고 해도 너무하잖아요, 형! 형은 어떻게 이 아저씨가 쇼히로 보일 수가 있어요? 쇼히가 들었으면 형 뼈도 못 추렸어요.”

“.......아으.......”

“자, 약 먹어요 약!”

 


요우키는 씩씩하게 말하며 품 안에서 작은 병을 꺼냈다. 병을 한번 흔들어 본 요우키는 나가토의 입을 벌리고는 그 안으로 액체를 떨어뜨렸다.

 


“지난번에도 썼던 것 같은데......그건 대체 뭐지?”

“이거요? 뭐겠어요, 약이죠.”

 


마다라는 텅 빈 사기병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고는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분명 맡아본 적이 있는 향이다.

 


“뭘로 만드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효과는 좋아요. 형이 가끔씩......상태가 안 좋아질 때, 이걸 쓰면 금방 숨이 편안해지거든요.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도 있고요.”

“따로 약을 제조하는 사람이 있나?”

“설마요! 이건 다 쇼히가 만든 거예요. 여기선 마음대로 아프면 안돼요. 큰일날려구......자칫하다 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내쫓기거나 여기에 쳐박혀서 나가지도 못하는걸요. 그래서 요즘 다들 무서워한다구요.”

“무서워한다고?”

 


요우키는 불안한 눈빛을 한 채 목소리를 낮췄다.

 


“ㅡ이상한 병이 돌거든요. 지금까지는 없었던 병요.”

“!!”


“아저씨도 본 적 있을지 모르겠지만......처음에는 온몸이 눈처럼 새하얗게 변하다가, 나중엔 시뻘건 열꽃같은 게 우두두두 돋아나는 병이에요. 그러다가 병이 심해지면, 눈코입에서 피가 한꺼번에 좍 흘러나오면서 죽어요.”

 


마다라는 얼굴을 살짝 굳혔다. 틀림없는 염독의 증상이다. 사쿠라마치에 염독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다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벌써? 스이센카야는 사쿠라마치에서 가장 큰 유곽 중 하나일텐데, 카무로에게까지 다 알려질 정도로 퍼졌단 말인가?

 


“너말고 다른 카무로들도 그 병에 대해 아는 거냐?”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나야 여길 많이 드나드니까 아는 거고요. 걔넨 여기라면 질색하는걸요. 아예 여기에 대해서 모르는 애들도 있고요. 언니들 중에서도 병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걸요. 그치만 갑자기 사람들이 숭숭 빠져 없어지는 게 보이니까, 눈치 빠른 사람들만 어렴풋이 짐작하고 쉬쉬하는 거죠. 그것 때문에 여기 온 코우시나 산챠 언니들도 많아요. 얼마 전에는 타유 언니도 한 명 그렇게 됐다고 하던걸요. 여기 일이 아니긴 하지만요.”

 


요우키의 말을 듣던 마다라는 순간, 방금 전 맡았던 액체의 향을 어디서 맡았는지 떠올렸다. 그는 품속을 뒤져 향낭처럼 생긴 주머니를 끄집어내어 코에 가져다 댔다. ......역시.

 


“요우키.”

“응.”

“하급 유남이나 유녀들은 백아 화장품을 잘 사용하지 않는 거냐?”

“에......백아요? 쓰고 싶어도 비싸서 못쓰죠. 다 선물받거나 유곽에서 구입한 걸로 쓰는 거예요. 지금은 유곽에서 구입해주거나 하지 않지만, 헤야모치 이상인 언니들은 거의 다 쓰는 것 같던데요. 근데 왜요?”

 


마다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요우키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이것만으로 저장고의 장소를 알아내기는 무리가 있었다. 조직과 내통한 놈들이 마와시라면, 분명 모두 한 유곽에 소속되어 있을 것이다. 범죄조직과 손을 잡을 정도로 욕심많은 놈들이 그냥 쟁여놓기만 할 리는 없고......틀림없이 조직의 묵인 하에 슬쩍슬쩍 백아를 흘려보내고 있겠지. 조금이라도 그들이 흘리는 떡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자들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유곽 내에 은밀한 구매자들이 다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아의 중독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백아를 구입할 수 있는 자들은 어떤 자들일까? 보우하치정도라면 몰라도, 마와시나 웬만한 유남 유녀들도 그 정도 금전은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놈들도 머리가 없지는 않을 터......조금이라도 비밀 유지에 도움이 되는 고객을 원할 것이 틀림없었다. 대다수의 거래자는 외부인이겠지만, 내부인일 가능성도 있었다. 정기적으로 거래할 수 있으면서 마와시들과 따로 접촉해도 의심을 사지 않고, 유곽 내 권력이 강해 혹시라도 새어나올지 모를 입막음을 할 수 있고, 거래 상인들과 접촉할 때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상대......

 


“아저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네가 수발을 든다는 타유......쇼히, 라고 한다 했지?”

“네, 그런데요?”

“그 오이란도 백아 화장품이나 백연을 많이 사용하나?”

 


요우키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저기서 보내주고 선물받는 게 많아서 갖고 있는 건 많아요. 마와시들 말로는 암시장에 팔면 돈방석에 앉을 정도랬는데. 근데 쓰지는 않아요. 평소에는 손을 대지도 않고요. 이거 만들 때 빼고는요. 담뱃대에도 백연은 절대 못 넣게 하는걸요.”

“.....!”

“뭐, 그런 거 안 써도 될 정도여서 그런 거겠지만요.”

 


마다라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복도에서 이곳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마다라는 재빨리 몸을 문 밖에서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숨겼고, 요우키는 더러워진 수건을 모아 소쿠리 안에 넣으며 방 안을 정리하는 척했다.

 


“이봐, 꼬맹아! 카부토가 너 찾는다. 빨리 튀어나와!”

“카부토가요? 왜요?”

“내가 아냐, 됐으니까 쳐 나와! 니새끼 때문에 내가 이딴 곳에 계속 서 있어야겠냐?”

 


요우키는 알았다고 소리치고는 마다라를 바라보며 눈으로 인사를 했다. 마다라는 발소리가 멀어지자 검을 허리춤에 꽂고, 삿갓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복면을 머리 뒤로 단단히 묶은 후 삿갓을 쓴 그는 문에 몸을 바싹 붙이고 인기척이 있는지를 살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실날같은 목소리가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ㅁㅏ다.....ㄹㅏ.......”

“......!”

“ㄱㅏㅈ......ㅣ마.....”

“......”

“가지, 마.......부타ㄱ......ㅇ......”

 


마다라는 말없이 나가토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고, 구겨진 이불을 똑바로 펴 주었다. 대부분 흐렸던 그의 눈동자는 간절함과 절박함을 담고 꺼질 듯 말 듯,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며 마다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죽음에 익숙한 자신은 그가 얼마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지금 당장 숨이 끊어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홀로 두는 것만큼, 박정하고 잔혹한 짓은 없을 것이었다. 그는 정말 운이 없었다. 그의 옆에 자신같은 쓰레기 대신, 조금이라도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미안합니다. 난, 가야 해요.”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에겐 해야할 일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완수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았다. 혼자 두지 마. 제발, 날 혼자 두지 말아 줘. 이미 씻을 수도 없을 정도로 더러워진 손에, 다시 한번 피를 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허리춤의 검을 부서져라 움켜쥐며 생각했다. 이번에야말로, 잡아낸다. 2년 전, 끝내지 못했던 그 날의 일에 확실한 종지부를 찍고 말 것이다.

 



ㅡ그를 위해서라면, 목숨 따위는 얼마든지 버려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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