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十八






十八

 


“분명히 귀신이야.”

“너도 들었잖아. 정말 발소리가 들렸다니까!”

“설마. 그런 게 어딨니?”

 


익숙한 옷자락이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떠들던 유녀들은 한순간에 모두 입을 다물고는 자신이 하던 일이 집중하려 애썼다. 그들에겐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마다라는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복도 구석에 나 있는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마다라를 본 토메소데 신조 나나코가 방에서 나와 그를 따라가며 말했다.

 


“쇼히, 혹시 또 『밑』에 가시는 건가요?”

“......”

“요즘 너무 자주 가시는 것 같아요. 마와시들 사이에 말이 많습니다. 주인님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 같지 않고요. 요우키가 그러는 거야 카무로니 봐줄 수 있다지만......”

 


마다라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눈동자만 움직여 그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무어냐. 네가 오로치마루 대신 나를 봐주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더냐?”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저는 그저, 걱정이 되어서......”

 


마다라는 대꾸없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1층으로 내려와 중정을 지나는 복도를 걸어가다 보면 눈에 잘 뜨이지 않는 뒷문이 나온다. 그 문을 나오면 바로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얼핏 꽤 크지만 검소한 저택처럼 보이는 그 곳을, 스이센카야의 사람들은 『밑』이라고 불렀다. 건물의 입구에는 유곽의 정문과 달리 마와시들이 서 있지 않았다. 유곽 건물의 뒤편에 있는데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감시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죽음의 집이었다. 여기에 사는 자들은 숨만 붙어있는 시체들이었다.

마다라는 최소한의 장식조차 되어있지 않은 무미건조한 복도를 걸었다. 유곽처럼 이곳도 복도 곳곳에 방이 있었지만, 그곳에서는 쾌락에 겨운 신음소리와 속삭임 대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들을 수 없을 색색거리는 숨소리와 가래끓는 소리, 기침이 흘러나왔다.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마다라는 가장 구석에 있는, 복도 끝의 왼쪽에 있는 방 앞에 섰다. 방문 안에서는 희미한 노랫소리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을 듯 흘러나오고 있었다.

 


낭군이 짐짓 장난을 섞어서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미인은 그 말 듣고 토라져서

꽃을 밟아 뭉개며 말하기를

 

꽃이 저보다 더 예쁘시거든

오늘밤은 꽃을 안고 주무세요.

 


방 안에서는 창문이 열려있음에도 살이 썩는 듯한 악취가 풍겨나왔다. 그 발원지는 말할 것도 없이 방 가운데에 누워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넋이 나간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끊김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마다라는 마치 악취 따위는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이부자리 옆에 앉았다.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미인이 꺾어들고 창 앞을 지나며

 

살짝 웃음띠고 낭군에게 묻기를

꽃이 예뻐요, 제가 예뻐요?

 


이불 속에서 노래부르는 남자는 차마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몰골이었다. 불에 다 타버린 꼬챙이처럼 바싹 마른 얼굴은 작은 조약돌만한 크기로 시뻘겋게 올라온 발진들에 뒤덮여 원래 피부색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뺨과 턱부분은 안부터 검게 썩어들어가 함몰되고 있었다. 마다라가 옆에 앉아있음에도 그는 누가 왔는지도 눈치채지 못하는 듯 했다.

 


“花開蝶滿枝 꽃이 피면 나비는 꽃가지에 가득하고

花謝蝶還稀 꽃이 시들면 나비는 날아가 버리니

惟有舊巢燕 오직 옛 둥지를 잊지 않은 제비만

主人貧亦歸 주인이 가난해도 여전히 찾아오는구나1“

 


초점없이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던 눈동자에 한순간 빛이 돌아왔다. 옅은 회색을 띤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마다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이 느릿하게 벌어지며 이름을 불렀다.

 


“ㅋ.....ㅤㅣㄴ.....쇼우.......”

“그래, 다카오(高尾). 나야.”

 


그의 속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부르르 떨렸다. 마다라는 설핏 웃으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나가토.”

“ㅇ...ㅤㅡㅇ......”

 


나가토가 그를 향해 손을 뻗자 마다라는 그 손을 잡아 다시 이불 밑으로 넣어주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를 보며 마다라는 오늘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나가토가 언제나 자신을 알아보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도 생판 모르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멀뚱멀뚱 있기도 했고, 카무로 때의 이름인 스이쇼(水晶)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금도 코우시였을 때의 이름인 킨쇼우(金称)라 부르고 있긴 했지만, 그가 착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바깥에서 사쿠라마치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이곳에 버려졌을 때, 자신은 아직 쇼히 오이란이 아닌 코우시 킨쇼우였으니까.

 


“좋으..ㄴ......냄......새.......”

“몸은 좀 어때? 예전보다......더 심해진 거냐?”

“지금ㅇㅤㅡㄴ......ㄱ....ㅤㅙㄴㅊㅤㅏㄶ아.....네가.....약......보ㄴ....ㅐ주니까.”

 


나가토의 시선이 방 구석에 쌓여있는 사기병들로 향했다. 마다라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품 안에서 비슷한 크기의 사기병을 꺼내어 나가토의 벌어진 입에 한 방울씩, 천천히 흘려넣었다. 계속된 통증으로 반쯤 감겨있었던 눈이 뜨여지며 약간의 생기가 맺혔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마다라를 올려다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또.....긴쇼우(銀称)의 꾸....ㅁ을.....꾼 거야?”

“.......!”

“알ㅇ...ㅏ......넌, 그 꿈을 꿀 때마다......여기로 내려오잖아......”

 


마다라의 표정이 굳었다. 긴쇼우. 다카오, 나가토에게 아직도 그의 이름은 긴쇼우다. 나가토의 눈에는 따스한 웃음기가 들어 있었다. 나가토는 그가 히스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몰랐고 더 이상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히스이는 어렸던 자신과 나가토가 유곽에 막 들어왔을 때 처음으로 만났던, 아름답고 모질지 않았던 선배 유남일 뿐이었다. 나가토의 시간은 그가 헤야모치 오이란으로 이름을 날리던 그 때로 주욱 고정되어있었다.

 


“그러ㄱㅗ.....보니.......너.....꼬ㄱ, 긴쇼우......같ㅇㅏ......향, 도......오ㅅ도......”

“......그래?”

“으ㅇ......그 때 같ㅇ...ㅏ.....우리가, 그를......처음 만났을 때 말야......”

 


나가토의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이 담겼다. 남자가 그리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은 히스이를 만난 그 날에 처음 알았다. 예나 지금이나 스이센카야는 여자들을 부끄럽게 할 정도의 미모를 갖춘 남자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그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이었다. 오이란으로 만들기 위해 제겐(女衒)2이 특별히 데려온 아이가 아니었음에도,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예와 재능으로 다른 유남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오쇼쿠에 비할 만한 코우시가 된 사람이었다.

그가 무엇보다도 뛰어났던 것은 춤이었다. 그는 부채를 들고 추는 춤을 좋아했었다. 그가 옅은 비취색 기모노를 입고 부채를 손에 잡은 채 몸을 움직일 때면, 누구도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럴 때의 그는 마치 천의(天衣)를 입은 무희 같았다.

 


“그 춤......많이 배웠.....어? 너도......긴쇼우만큼......출 수 있는 거야?”

 


마다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런 평가를 할 수 없다. 히스이의 춤에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삶을 포기해버린 자신은, 복수에 눈이 멀어있는 자신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앞으로도 그런 춤은 결코 출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마다라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그럼에도 동경했다.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른 오이란과 달랐다. 평소에도 손님을 끄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으며 춤에만 집중했을 뿐이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 때문에 주위의 유남들에게 따돌림당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가 조용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다투어 그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남이나 유녀들은 그가 손님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을 질투했고, 게이샤들은 유남 주제에 예인 흉내를 낸다며 불쾌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변호하려는 행동이나 다른 유남들과 사이좋게 지내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제를 살았듯이 오늘도 살아갈 뿐이었다. 카무로들이나 신조들 중에서는 그를 바보 취급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마다라나 나가토처럼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카무로들을 향한 내리사랑을 잘 내비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ㅁ.....ㅏ다......라......”

“......기억, 하고 있었어?”

 


나가토가 배시시 웃었다. 물을 필요도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다라 역시 엷게 웃었다. 스이쇼, 킨쇼우, 쇼히. 과거 자신의 이름이었고 현재 자신의 이름처럼 되어버린 명칭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자신은 아니다. 누구나 자신을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진짜 자신이 누군지는 모른다. 마다라.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죽어버렸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지금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다. 나가토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아직......도, 그......ㄹㅤㅡㄹ.......좋아해?”

“......”

 


동경. 경외. 차라리 그 마음에서만 끝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날 밤, 그를 보지 못했더라면. 달빛이 내린 복도에서 춤추던 그를 보지만 않았더라면. 새벽 달빛이 아스라이 비치는 정원 위의 붉은 다리 위에서 그는 춤을 추었었다. 달빛이 스며든 흰 옷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이제는 빛이 바랜 기억들 사이에서도 그 기억만큼은, 여전히 색을 잃지 않고 있었다. 마다라는 자조했다. 나는 아직도 그를 연모하고 있는가. 그리 묻는다면 대답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연정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무겁고, 증오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애달픈 감정이 돌처럼 가슴 속에 박혀 있었다. 그 감정은 언제부터인가 공허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를 생각하면 여전히 괴롭다. 자신을 바라보는 나가토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마ㄷ.....ㅏ라......”

“......응.”

“난, 네가......ㅎㅤㅐㅇ복했으며ㄴ......좋겠어.”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

 


자신이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후회가 남지 않을 길을 선택한 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마다라는 나가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역시 선택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그를 동정할 수 없다. 연민을 가질 수도 없다. 그는, 후회하고 있을까. 결국 덧없는 것일 뿐이었던 연정을 좇아 사쿠라마치에서 도망친 것을, 죽지 못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을. 그는 자신보다 더, 히스이와 닮았다.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잊으라고 말했던 그와.

 


“그만ㄷ....ㅤㅜㄹ......수는, 없ㄴㅤㅡㄴ......거야?”

“......”

“제일 ㄱㅚ로운.....건, 너......잖아.”

 


마다라는 쿡쿡 웃었다.

 


“여기서 밑바닥이 아닌 년놈들이 어디 있겠어?”

“......”

“여기나 밖이나 똑같아. 하나같이 죽어가는 놈들뿐......몸이 썩어가는 냄새를 향으로 가리고 있을 뿐이지.”

 


빛을 보지 못한 식물은 뿌리부터 썩어간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망가져간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몸부림을 친다. 설령 그것이 소용없는 짓일지라도, 그 끝에 남는 것이 파멸뿐일지라도. 나가토의 눈이 다시 흐려졌다. 마다라는 나가토의 얼굴을 덮은 빛바랜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서 문 쪽으로 돌아섰다.

 


“ㄷㅏ......음으ㄴ.......어떻ㄱㅔ, 되는데......?”

“......!”

“그......다음, ㅇㅔ느ㄴ......? 너는.....?”

 


마다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눈은 우물처럼, 깊게 가라앉아있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이윽고 덧없이 허공을 맴도는 노랫소리만이, 고요한 복도를 채웠다.








 




  1. 당나라 시인 우분(于濆,832?~미상)의 시 감사(感事).
  2. 전국에서 유녀가 될 아이들을 모아 유곽에 공급하고 조달하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말. 짬이 쌓인 제겐은 4,5세 짜리 아이를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오이란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절차를 밟고 값을 주어 사 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인신매매인 경우가 많았다.



바라기눈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