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十二



十二

 



흰 꽃을 먹으면 몸 속에서도 흰 싹이 자라난다네

자라는 동안은 극락, 멈춰버리면 지옥불

흰 꽃이 핀 자리에는 붉은 꽃이 피어

몸은 하늘로 날아올라 연기처럼 사라진다네



 

흰 손에서 하얀 가루가 소르르 떨어져 내렸다. 마다라는 손가락에 남아있는 가루를 살짝 핥아보고는 보일 듯 말 듯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품질은 확실하군. 마다라는 하얀 가루가 쌓여있는 누런 종이 옆에 놓여있던 서찰을 집어들었다. 내용을 확인한 그는 등불에 서신을 태워버렸다. 검게 탄 종이조각이 회색가루로 바스라져 등잔대 아래로 떨어졌다. 마다라는 작은 산처럼 쌓여있는 흰 가루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자라는 동안은 극락, 멈춰버리면 지옥불이라......”

 


제 몸을 태우는 불길을 아픔 없이 구경할 수 있는 곳이 극락이라면 차라리 지옥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흰 싹에서 나온 이 흰 가루 한 움쿰이 얼마나 많은 자들을 지옥보다 더한 극락으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 아마도 백아를 처음 발견한 자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자들이 떼돈을 벌었는지도 모를테지. 그는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띠우며 준비해 놓은 물동이에 흰 가루를 조금씩 떨어뜨렸다.

이 가루를 혀에 대면, 처음에는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듯 하다가 서서히 달콤한 맛이 입 안을 점령하기 시작한다. 끝맛은 과일을 먹은 것처럼 새콤하면서도 약간의 씁쓸함이 섞인 독특함이 있다.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입에 댔다가, 이내 미친 듯이 이 가루를 핥고 바르고 들이마시려 혈안이 된다. 그야말로 마약(魔藥). 몸 안에서 자라난 흰 싹은, 남김없이 숙주를 먹어치워버린다. 그럼에도 고통으로 신음하고 썩어가는 사람들은 구원과도 같은 이 가루에 손을 뻗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마다라 자신에게 이 가루는 자주 쓰면 곤란하긴 하나 꽤 편리한 도구였다. 특히나 귀찮은 손님을 잠재우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그는 여러 약초들을 섞어 정제한 색색의 부스러기와 가루들을 떠내어 물동이 속으로 던져넣었다. 마다라는 담뱃대를 물며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 『달의 눈』, 그 조직을 움직이는 게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안목만큼은 뛰어난 놈이 틀림없다. 외인들과 동맹을 맺은 것은 둘째치더라도, 백아의 가치와 잠재성을 알아본 것은 높게 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다라는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백분 상자와 백연이 담긴 통에 시선을 돌렸다. 선물로 온 것이었지만 손끝하나 내지 않은 물건이었다. 암시장에 내놓으면 꽤나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달리 쓸 곳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놔두고 있었다.

 



“쇼히 쇼히-, 들어가도 돼요?”

 



마다라는 귀찮은 표정을 짓다 연죽으로 화장대를 쳤다. 요우키가 기다렸다는 듯 도도도 방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부루퉁한 얼굴로 입술을 쭉 내밀고 있던 요우키는 들어오자마자 마다라의 앞에 털썩 앉아 그를 빤히 응시했다.

 



“주둥이는 내밀라고 있는 게 아니다. 그따위 얼굴을 계속하면 난간 아래로 떨어뜨려주마. 할 말이 있다면 빨리 하거라.”

 



마다라의 냉랭한 말투에 흠칫한 요우키는 얼른 입을 집어넣었다.

 



“......쇼히, 그 썅년 좀 어떻게 하면 안 돼요? 짜증나 미치겠어요!!”

“무슨 말이냐?”

“아오!! 아키하 말이에요, 아키하! 그년이 계속 쇼히에 대해서 멋대로 말하고 다닌다구요. 변변찮은 코우시라면 상관없는데 그 여자도 오이란이잖아요! 개같은 년이 어떻게 입을 놀리고 다니는지, 다른 언니들도 시구레 언니하고 나나코, 미오리 언니들 빼고는 다들 쇼히가 안 보이기만 하면 이때다 싶어서 뒷담을 해댄다구요. 쇼히 앞에서는 고개도 못드는 것들이!!!”

 



요우키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식식거렸다. 한동안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마다라는 부채로 요우키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얏!”

“이젠 별 쓰잘데기 없는 걸로 날 귀찮게 하는구나.”

 



요우키는 머리를 감싸며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다라의 표정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일일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아깝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솔직히, 비웃을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 나이에 오이란까지 올라왔으니 머리는 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어찌나 훌륭하게 예상을 빗나가는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멍청한 년 같으니.

 



“이거나 『밑』에 전해주고 오거라.”

 



마다라는 작은 사기병을 요우키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밑......지금요?”

“왜, 그 유령이라도 만날까봐 그러느냐?”

“우씨, 이젠 안 믿어요! 쇼히가 유령은 없다고 그랬잖아요. 그치만......”

 



요우키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흐렸다.

 



“형은 괜찮지만......『밑』은 무서워요.”

 



마다라가 코웃음을 쳤다.

 



“널 어찌할 힘이 남아있는 놈들이라면 거기에 들어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는 송장이 무서우냐?”

“그래도......!!무섭다구요. 들어오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단 말이에요.”

 



마다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채를 든 손을 올리자, 요우키는 움찔 놀라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우는 소리할 시간에 다 갔다오고도 남았겠구나. 진짜 우는 소리 좀 내보고 싶으냐?”

“우와아아!! 그, 그만둬요 쇼히!! 가요, 간다니까요! 이씨......”

 



방문이 닫히고, 마다라는 자리에 앉지 않고 벽에 기댄 채 담뱃재를 털었다. 이걸로 며칠간은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언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는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괜찮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토비라마 님, 쿠라마 공으로부터 서신이 당도했습니다.”

 



토비라마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소년이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토비라마는 부드러운 눈으로 계속하란 눈짓을 보냈다.

 



“무엇에 대한 서신이냐?”

“오오츠츠키 상단주가 다른 분들을 초대하여 연회를 연다고 합니다.”

 



토비라마는 흰 얼굴에 화장이라도 한 것처럼 눈꼬리가 붉었던, 곱상한 눈매를 가진 남자를 떠올렸다. 토비라마보다 여덟 살, 하시라마보다 다섯 살 위인 그는 계집같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타고난 상인으로서, 장사에 있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함과 가차없는 결단력으로 유명한 사내였다. 하긴, 그 정도의 실력도 없으면 불의 나라 상단들의 대표격이나 다름없는 오오츠츠키 상단을 이끌어갈 수 없을 터였다. 흙의 나라의 비단과 먹, 물의 나라에서 생산되는 진주와 소금, 특산 과일들은 오오츠츠키 상단의 주 거래 품목으로서, 그 수입은 불의 나라의 세공품, 필기구와 서적 등의 수출과 함께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가 참석한다고 하더냐?”

“상단주인 오오츠츠키 공과 코쿠오 공, 번개의 나라에서 사카키바라 공과 오카베 공, 물의 나라에서 시바타 공과 츠가루 공, 흙의 나라와 바람의 나라에서는 아라키 공과 킷카와 공이, 고토 공의 대리로 쿠라마 공이 참가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이름들을 적당히 흘려들으며 토비라마는 담뱃대를 비스듬히 물었다. 앞에 부른 놈들은 대부분 각국에서 중급 대신 이상인 자들이다. 그런데도 고토란 놈은 오지 않는다 이건가. 쿠라마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이라 생각한 건지, 애초에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오만방자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세력이 있다 한들 불의 나라 속령(屬領)을 다스리는 수령에 지나지 않은 것을. 토비라마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충성심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군.”

“쿠라마 공 말씀이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태도 하나 변하지 않다니 심히 놀라울 뿐이다. 나라면 자객(刺客)이라도 고용해 죽여버리려고 했을 텐데 말이야. 하기사, 그렇지 않으면 그 고토란 놈이 그리 신뢰할 리 없을테지.”

 



서신을 들고 있던 시동이 토비라마를 흘끔거리다 물었다.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요?”

“귀찮지만 참석해야겠지. 술시(戌時)가 되기 전에 출발할테니 채비해 놓거라.”

 



시동이 고개를 숙이고는 나가려던 차, 예고도 없이 방문이 드르륵 열리며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싼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시동은 예기치 않은 불청객을 매섭게 흘겨보고는 도망치듯이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마치 닌자나 자객의 역할을 하는 살수(殺手)같은 차림을 한 남자는 반라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침상에 기대어 있는 토비라마의 모습이나, 알몸으로 그의 성기를 정성껏 빨고 있는 소년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토비라마는 담배 연기를 음미하며 그를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넌 정말 목석같은 남자로군. 조금은 변한 게 있나 했더니만...... 가랑이 사이에 물건이 있기는 한지 의심스러워.”

“저는 보고를 하러 왔을 뿐입니다. 당신이 뭘 하던 제 알바는 아니지요.”

 



철저히 업무적인 말투에 토비라마는 김이 샌 표정을 지으며 소년을 물러가게 했다. 그는 탁자 옆에 개켜둔 옷을 걸치며 자리를 고쳐 앉고는 진지한 눈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사쿠라마치의 보우하치들이 유곽 내에서 백아 제품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했습니다.”

“......!”

“유녀나 유남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일도 심심찮게 있는 모양입니다. 보우하치들이 마와시들을 시켜 입막음을 하고 있지만 암암리에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염독(焰毒)이 나타나기 시작한 거로군.”

 



토비라마는 깍지를 낀 손을 코 밑으로 가져갔다. 염독. 몸에 붉은 열꽃 수십개가 오르기 시작하고, 몸이 손끝, 발끝부터 새하얗게 변하는 증상으로 중증의 백아 중독자들에게 발생하는 병증이었다.

 



“젠장.”

 



이걸로 사쿠라마치가 저장고 중 하나일 거라는 가정은 증명된 셈이었다. 가능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라 웬만큼 대담한 놈이 아닌 이상 엄두도 내지 못할 거라고 여겼건만......설마 진짜로 저장고로 활용할 줄이야. 배짱도 배짱이지만 감탄스러울 정도로 영리한 장소 선정이다. 사쿠라마치라는 마을 특성상 사람이 많이 오가고 그 국적이나 종류도 다양한 만큼, 무언가를 숨기기에 좋은 장소임은 틀림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금세 인파 속에 묻혀버리고, 유곽을 방문한다는 핑계로 쉬이 저장고를 드나들 수 있다. 운반도 다수의 인원을 동원한다면 검문 따위는 가볍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내부의 조력자를 잡아야겠군.”

 



사쿠라마치는 넓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으나 극도로 패쇄적이었다. 한정된 땅에 빽빽하게 들어선 유곽 건물들은 외부인이 볼 때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그 안에 그토록 많은 백아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사쿠라마치의 구조와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조력자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다. 토비라마는 눈을 들어 남자를 응시했다.

 



“보우하치들일 가능성은?”

“낮습니다. 아무리 탐욕스럽다지만 유곽의 경영에 대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이런 일에 손을 대려 하지 않을 겁니다. 매년 매독이나 임질로 죽는 유남 유녀들만 해도 수백 명이 훨씬 넘어가는 판국인데 여기서 염독까지 발병하게 되면 어찌 되겠습니까? 수고비를 받는다 해도 위험이 너무 큽니다.”

 



토비라마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다면 마와시로군. 한 명이 이런 짓을 벌일 수는 없을 테니 다수가 이익을 나누기로 합의하고 벌인 일이겠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비라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귀찮게 됐다. 내부조력자가 있는 이상 바깥에서 유곽을 조사한다 한들 큰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은 명약관화했다. 지금까지 발견한 저장고들은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그런 것들은 없애더라도 미미한 타격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확실한 손실을 입히기 위해서는 큰 것을 잡아야 했다.

 



“유통경로에 대해 뭔가 알아내신 것은 없습니까?”

“암시장에서 백아를 유통하는 가게들을 조사해보니 거의 행상인이거나 중소 상단들인 경우가 많았다. 백아를 판매한 사실을 추궁하니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은 양반이고, 백아를 처음 산 상단에 대해서는 서로 상대편이라고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하더군. 경로를 추적해봐도 중간 과정에서 거치는 곳들 중 유령 상단들이 너무 많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예 상단을 사칭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잡으려고 할수록 손 안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이렇게 거지같을 줄은 몰랐다. 토비라마는 입 안의 담뱃대를 까드득 물었다. 그의 앞에 서 있던 남자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입을 묵묵히 다물고 있었다. 검게 내려앉은 그의 눈동자는 칼끝의 섬광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조직과 내통하는 마와시를 잡겠습니다.”

“어떻게?”

 



그의 입술이 차가운 웃음을 담은 채 휘어졌다.

 



“그쪽만 조력자를 쓰라는 법은 없겠지요.”


바라기눈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