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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염향(染香) 六







 



“세상에, 또야!”


 


마다라의 심부름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려던 요우키는 낯익은 일꾼들이 비단, 기모노, 장신구들과 화장품들을 한아름씩 지고 오는 것을 이젠 질린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오로치마루는 그들에게 약간의 수고비를 챙겨주며 흐뭇한 표정으로 떠나보냈다. 카부토는 요우키를 위로 올려보내고는 감탄과 비아냥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정말 대단함을 넘어 멍청해 보일 정도군요. 하루가 멀다하고 이런 선물을 계속 안겨주니 말입니다. 그래봤자 지체 높은 무가의 자제도 아니고 유남일 뿐인데 말이죠.”

“그래, 그는 그저 유남이지. 하지만 그 유남의 재주는 불의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애들의 학식, 교양, 기품, 예술, 문재(文才)를 다 합쳐도 따를 수 없을 수준이지. 거기에 밤기술과 미모까지 군계일학이니 남자들이 줄줄이 목을 매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않으냐?”

“......그렇지요, 마치 남자에게 안기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카부토가 진심을 담아 대꾸하자 오로치마루는 히죽 웃었다.




“그러니 우리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 그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게 해 주고 있으니 말이야.”








바람은 조금 차가운 감이 있었지만 감기를 걱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마다라는 이부자리에서 머리를 괸 채 비스듬히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뱃대는 실로 편리한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운 상태에서 피워도 담뱃재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이부자리 옆에는 각자 다른 봉투에 든 서신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그는 서신들의 가장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에 손을 뻗었다. 우타마로에게 부탁한 그림이었다. 좌르르 펼쳐진 두루마리 속에는 중년 즈음으로 보이는 한 남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었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비교적 깔끔한 인상을 줄 이목구비와 얼굴선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마 중간부터 시작해 오른쪽 눈을 지나 오른뺨 관자놀이 밑까지 이어지는 칼에 베인 듯한 흉터는 남자를 어줍잖은 부랑배나 도적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다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두루마리를 내던졌다. 이래서는 우타마로에게 꿈에서 본 사람이라는 핑계까지 대면서 그림을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나름대로 설명을 잘 살려내려고 한 티가 보였지만, 흉터를 제외하면 세세한 부분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정작 두루마리에 담기를 바랐던 그 얼굴은 그 자신은 떠올릴 수 없었다. 앞뒤전후가 혼란스럽게 뒤엉킨 기억 속에서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목소리뿐이었다. 마다라는 팽개쳐져 있던 초상화 두루마리를 말아 쥐며 그래도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상화를 토대로 그가 가지고 있는 연줄을 최대한 활용해 본다면, 실마리를 잡는 것은 예전에 비한다면 훨씬 수월해질 것이었다.

 



“이쪽은 됐다고 치고......”



 

마다라는 금붕어들이 들어있는 어항 옆 오동나무장 뒤에서 몇 통의 서찰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흝어보았다. 눈동자를 굴리며 서찰들을 들여다보던 그는 백송(白松)으로 만든 아름다운 경대를 보고, 최근 미츠자네가 그에게 보내온 선물들과 그 가치를 어림잡아 헤아려보았다. 미츠자네가 자신에게 쏟는 정성과 돈은 과장 보태지 않고 한 나라의 영주가 한창 불타오르는 나이에 가장 아끼는 애첩에게 들이붓는 것과 비슷했다. 원래부터 자신이 눈길만 조금 주었다 하면 곧바로 그를 선물해 주는 남자였다. 그런 행동은 물론 순수하게 마다라의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자신의 남첩에게 이 정도쯤은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이유도 클 것이었다. 실제로 그, 고토 미츠자네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남자였다. 그는 하마츠의 지배자이자 관리자였고 그에 상응하는 부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그는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이전까지 주었던 선물도 고가였지만, 금실과 은실만으로 자은 기모노, 큼지막한 녹보석과 남보석으로 장식된 팔찌, 곱게 간 진주가루를 넣은 화장품 등 그가 최근 자신에게 보내오거나 직접 건네주는 선물들은 이름있는 귀족 아가씨나 주인에게 가장 총애받는 시동조차 쉬이 얻을 수 없을 정도의 귀한 것들이었다.

 



“아무리 하마츠를 다스린다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결코 가볍지는 않을 터인데......예상보다 잠잠하군. 어째서지?”

 



세금을 다시 올린 건가? 아니, 그랬다면 상인들에게서 이미 소식이 흘러들어왔을 터. 주변에서도 그에게서도 별다른 말을 듣지 못했으니 가신 중 만만한 놈들을 꼬투리잡아 턴 것도 아닐 것이고......그렇다면 무엇이지? 돈이 계속 나올, 다른 구멍이라도 생겼다는 말인가? 마다라는 금침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생각에 잠겼다. 하마츠에서 큰 반발 없이 돈을 긁어낼 수 있는 구멍이라면......외인밖에는 없을 것이다. 사쿠라마치를 방문하는 손님들 사이에서도 외인들에 대한 것은 심심찮게 나오는 화제였다. 여러 가지 정보를 조합해 보았을 때, 최근 입국하는 외인들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사실로 보였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얼마 지속되지도 않은 평화에 취해 새로운 무언가로부터 자극을 얻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어하는 높으신 분들의 방만함에 있을 것이었다. 어쩌면 평화를 누리면서도 전쟁을 준비하는 권력자의 행태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었다. 위정자(爲政者)란 본디 그런 것이니까. 뭐, 어느 쪽이든 지금 자신에게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면 외인들이 그의 새로운 화수분이 된 걸까? 그 가정의 전제는 그들에게 그만큼의 재력이 있으냐는 것이다. 외인들의 옷차림이나 물건들이 귀족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억지로 아귀를 끼워맞춘다면야 꽤 납득할 만한 설명을 만들어 낼 수 있을테지만, 마다라는 끝이 개운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라난 수염을 매만지던 마다라는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이불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서찰 중 하나를 집어들었고, 그를 뜷어져라 응시했다.

 



“『달의 눈』이라.....”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이 조직은 자신에게 최고의 패를 갖출 수 있는, 핵심적인 장기말이 되는 셈이었다.



 

“아주 좋아. 이걸ㄹ......!!!”



 

순간적으로 머리를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에 마다라는 벽을 잡은 채 뒤따라오는 현기증을 견뎠다. 점점 찾아오는 횟수가 잦아진 이 반갑잖은 불청객도,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뭔가 보인다고 생각하면, 이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다. 안개 속에서 애써 앞을 보려 하는 느낌이었다. 고통이 가시면 목소리가 뒤따라온다. 죽여. 익숙한 음성이 자신에게 속삭인다. 마다라는 식은땀을 훔쳐내며 눈을 감았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마다라는 손 안의 부채를 부서져라 꽉 움켜쥐었다. .....닥쳐. 제발 좀 닥쳐.


 








 

 

“쇼히, 쇼히이이이!!”



 

요우키는 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날아오는 옥 재떨이를 간발의 차로 피하는 데 성공했고, 마다라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칫 소리를 내며 담뱃대를 물었다. 요우키는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으며 마다라를 올려다봤다가 이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마다라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냐?”

“아니, 그......쇼히, 왜, 옷을......”



 

마다라는 훈도시도 입지 않은 완전한 알몸에 기모노 위에 입는 정홍색 겉옷만을 걸친 채 옆으로 누워있었다. 덕분에 백분을 온몸에 바른 듯 흰 피부가 완연히 드러나 있었고, 음모가 깔끔하게 다듬어진 국부와 모양 좋은 성기 역시 숨김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거기에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균형 잡힌 가슴팍과 복숭아빛 유두, 단단해보이면서도 낭창한 허리,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둔부와 매끈한 다리는 한데 어우러져 그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절로 부처님을 부를 정도의 치명적인 색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숫처녀 목욕 훔쳐보다 들킨 땡중같은 반응이구나. 사내 놈 몸이라면 이미 물릴 정도로 보았을 터인데 뭘 그리 놀라느냐? 아무래도 네 물건은 다른 녀석들보다 빨리 제 기능을 할 모양이구나.”

“우이씨......놀리지 말아요!! 지금 쇼히를 보고 태연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 손에 장을 지져요, 장을! 암튼 됐으니까 빨리 옷이나 입어요. 주인님이 부른다구요.”



 

마다라는 귀찮음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속도로 옷을 걸쳐입고는 초상이 담긴 두루마리를 슬쩍 허리춤에 끼워넣었다. 마다라의 걸음을 졸졸 따라 걸어가던 요우키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 싶더니 마다라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마다라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려 요우키를 쳐다봤다.



 

“저, 쇼히......귀신이나 유령 같은 거, 믿어요?”



 

마다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요우키를 응시하다 그 머리를 꾹 눌렀다.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수련이나 더 열심히 하거라. 네 화도(花道)와 서예는 거의 절망적인 수준이더구나. 쓰레기 바로 위다.”

“그, 그건 코하루 할멈이 나한테만 너무 가혹하게 하는 거라구요......그래도 샤미센(三味線)1이랑 샤쿠하치(尺八)2는 괜찮다고 했어요! 향 종류랑 조합도 거의 다 외웠다구요!”

 



요우키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럼 내가 시험해봐도 문제는 없겠구나.”

“......에. 에?! 쇼, 쇼히가요? 그건 아직......아니, 아니! 그건 좀 무리.....”

“거짓말도 방편이라지만 참으로 궁색하구나. 이젠 좀 더 나은 거짓말을 배울 때도 되었거늘.”

 



마다라는 한심하다는 빛이 역력한 눈을 했다. 요우키는 어이가 없어 입을 벌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사쿠라마치에서 내로라하는 타유들 중에서도 음률, 기예, 회화, 시를 비롯한 모든 방면에 있어 쇼히보다 까다로운 심사관은 없었다. 그의 밑에서 배우는 후리소데 신조들은 좋다나 괜찮다는 말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소원이 없겠다며 울상을 짓기 일쑤였다.



 

“시험 볼 때마다 맞기만 하니까 그렇죠!! 그리고 거짓말 아니에요! 유령 이야기도 진짜라구요. 어제 새벽에 소피를 보러 가는데, 창 밖으로 검은 그림자가 확 지나갔다구요. 똑똑히 봤어요. 며칠 전에도 그런 적 있고요.”

“......”

“다른 애들도 본 적 있댔어요. 발소리 들은 애도 있었는걸요. 진짜 귀신이 아닐까 했는데......쇼히는 본 적 없어요?”

“나는,”



 

마다라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지만, 그 속에는 얼어붙은 듯한 싸늘함이 깔려 있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 것에 신경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아.”

 



마다라는 말없이 고개를 돌려 걸었다. 귀신이라. 만약 있다면 유령의 행렬이 이 마을 전체를 채우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사쿠라마치에 유령이 있다한들 뭐가 대수인가? 귀신은 손님이 될 수도 없고 외로움을 달래주지도 못한다. 이곳은 늘 사람에 목말라 있는 곳이다. 손님도 유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손님들이 옆에 있을 사람이 없어도 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유남과 유녀들은 자신들을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죽는다. 나락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밟을 것이 있어야 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무간지옥으로 떨어뜨리고 떨어뜨려, 그들을 딛고 올라간 후에야 숨을 쉴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사람을 움직여야 한다. 누구든 단 한사람이라도 끌어들이고 매혹시키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어서 오시지요, 오이란.”



 

오로치마루가 분재를 하던 손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희다 못해 푸르게 보일 정도인 얼굴이 웃는 모습은 그다지 기분 좋은 것이 되지 못했다. 자신도 백분을 바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달리 흰 피부란 말을 듣고 있지만, 그건 약간의 과장이 들어간 관용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남자는 말 그대로 정말 백분을 전신에 덮어씌운 사람처럼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다. 찢어진 눈매에 뱀같이 생긴 눈동자는 그의 인상을 더욱 기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용무는?”

“이런이런, 급하기도 하셔라. 일단 앉으시지요. 카부토, 차를 내와라.”



 

카부토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마다라와 마주 앉은 오로치마루는 두 손을 맞잡으며 마다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냐, 새삼스레 네 소유의 상품에 대해 품평이라도 하고 있느냐?”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 계산이 느린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에 대한 평이라면 이미 13년 전에 마쳤지요. 당신이 이곳으로 온 바로 그 날에.”

“여전히 자신만만하군.”

“저도 장사꾼이라서 말이지요. 장사꾼에게 안목과 수완 외의 능력이 달리 있겠습니까? 자화자찬처럼 들려 거슬리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제 눈은 꽤나 훌륭하답니다.”

 



마다라는 차갑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그래서, 이리 귀찮게 내 쉬는 시간을 방해한 연유는?”

“별 것은 아닙니다. 당신에게, 이번 보름에 열리는 연회에서 춤을 추어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서지요.”



 

마다라의 얼굴이 한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굳었다. 검은 눈동자에서는 불꽃이 번쩍였다. 빠르게 냉정을 되찾은 후에도 그의 눈은 약간 다른 감정을 담은 채 맹렬히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 연회는 다섯 나라의 영주, 그 측근들과 중신급의 거물 손님들이 모두 모여 회합을 가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고급 유곽들이 모두 차지하고 싶어했던 기회지요. 노기쿠야 측을 떼어놓기 위해 꽤 많은 손이 들긴 했습니다만......어찌되었든, 선택된 이상 스이센카야만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접대를 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과연, 그래서 우치하류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연회 장소로 스이센카야가 선택된 것은 당신의 공이 큽니다. 당신의 고객들 중 고위급 중신만 따져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니까요. 다른 분들도 그림으로만 봤던 당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요.”



 

마다라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최고의 여흥은 가장 나중에 보여준다......는 것인가? 과연 네가 할 법한 생각이로군. 하지만 거절하겠다. 발정난 개들 앞에선 부채를 들 마음도 나지 않느니라.”



 

마다라는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이미 빈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는 오로치마루와 카부토를 지나쳐 계단 쪽으로 향했다.



 

“그들은 『히스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



 

마다라의 발걸음이 멈췄다.



 

“히스이의 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당신이 그의 부채를 이어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

“그들은 쇼히, 이 사쿠라마치가 생겨난 이래 최고의 오이란이라는 당신이, 히스이 이상이라는 당신이 그 이상의 춤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단 말입니다. 당신은 그 자리에서 도망칠 참입니까? 아니면......아직도 지나간 시간에 발목을 내어주고 있다고, 이곳을 찾는 모든 손님에게 알리고 싶은 겁니까?”



 

오로치마루는 마다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다라의 시선이 그를 꿰뜷듯이 응시했다.



 

“쇼히, 난 당신이 히스이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로치마루는 마다라 쪽으로 얼굴을 숙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보여주십시오. 이곳에 군림하는 게 누구인지. 지금껏, 그렇게 해오지 않았습니까?”

 

 








 

다른 이에게는 그저 아름답게만 보일 달빛이, 너무나도 증오스러웠던 밤이 있었다.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고 색이 바래지지 않는 그 아름다움이 미치도록 저주스러웠던 밤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쥐어뜯기고 산 채로 갉아먹히는 듯한 이 아픔과 괴로움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라는 뼈저린 깨달음에 밤새로록 눈물을 삼키며 절망 속에 뒹굴었던 밤이 있었다.



 

‘다 잊어라.’



 

그 수많은 밤들을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말도 있었다.



 

‘하지만......기억해다오.’



 

마다라는 조용히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촛불 하나 켜지지 않은 방에는 어둠만이 켜켜히 내려앉아 있었다. 선잠이라도 들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바깥에서는 이따금씩 카무로들의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발걸음 소리와 옷자락이 사박사박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영업이 시작되지는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곧 다홍색과 연홍색 등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할 것이고, 단장에 여념이 없는 유남과 유녀들을 재촉하러 마와시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들려올 것이었다. 발소리만 들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불을 켜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켜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 끌 수 있는 여유따위는 없는데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불이 켜지면 경대를 찾아 습관처럼,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치장을 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처럼. 마다라는 자신의 생각에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자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마치 자연스러운 행동인 것 같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이제 와서,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구분 짓는단 말인가. 이 곳에 팔려온 순간부터 자신은 이미 사내도 계집도 아닌 몸이었거늘.

 



‘보여주십시오. 이곳에 군림하는 게 누구인지.’

 



개소리. 마다라는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허탈한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군림이라고, 누가 말인가?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이 사쿠라마치에서 과연 누가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갖가지 향내와 화장품 냄새, 음악과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는 이 전쟁터는 평화가 존재할 수 없는 장소였다. 정점은 있으되 나락에는 끝이 없었다. 정점에 서봤자 어디까지나 일시적일 뿐, 언제든 끌어내려질 수 있었고 뒤바뀔 수 있었다.

 



‘나, 오이란이 되겠어.’

 



그래, 빌어먹을.




‘그냥 오이란따윈 관심없어. 난 오쇼쿠가 될 거야. 그래서......’

 



일방적인 선언이나 다름없었던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은 계획한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잘 되어가고 있다는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 따위는 없다. 지금까지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왔다.


문득, 가슴이 유달리 무겁다고 느꼈다. 마다라는 기모노와 속옷 사이에 들어있던 부채를 꺼내 들었

다. 검은 빛깔의 향나무로 만든 부채는 만들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표면의 윤기를 간직한 채 반질반질 빛나고 있었다. 마다라는 가만히 부채를 펼쳐 얼굴을 가까이 했다. 코끝이 부드러운 천에 닿았고, 그리운 향이 코 안으로 스며들었다. 마다라는 이마를 부채에 대며 중얼거렸다. 원했다......라. 정말 그런가? 마다라는 말없이 검은 부챗살을 매만졌다. 아니, 자신은 오쇼쿠의 자리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이 사쿠라마치의 그 누구보다도, 이 자리가......

 



“필요했을 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이 자리에 올라야만 했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다. 자유 따위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 이 곳에서 장기말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마다라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긴쇼우. 히스이. 당신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오로치마루는 그가 어리석었다고 말했다. 뛰어난 재주가 있으면서도 멍청했던 탓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마다라는 쓰게 웃었다. 그랬지. 그는 열 가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한 가지밖에는 보려 하지 않았다. 수없이 상처를 입으면서도 한사코 외길만을 고집했던 그 사람은 순수했기에 그토록 바보같았다. 그랬기에 잔혹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촛불이 켜지고, 경대에 유령처럼 하얀 얼굴이 비쳤다. 마다라의 입이 나직히 속삭였다. 히카쿠. 그 이름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 고양이 가죽이나 개가죽을 붙인 공명통에 기다란 손가락판을 달고, 그 위에 비단실을 꼰 세 줄의 현을 친다. 무릎 위에 비스듬히 얹고 발목(撥木)으로 줄을 튕겨 연주한다.
  2. 역시 일본 전통악기. 리드 없이 세로로 부는 대나무 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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