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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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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찰 시간이 되기 전에 겨우 돌아온 나는 카가미 씨에게 잔소리를 한 바가지 들어야만 했다. 아무리 퇴원하는 날까지 얼마 안 남았다곤 하지만, 말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얼마나 놀랐는 줄 아냐며 카가미 씨는 나를 야단쳤다. 한숨을 쉬는 카가미 씨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딜 다녀온 건지 물었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한밤의 오토바이 질주에 동참한 데다 지붕도 없는 난간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허겁지겁 돌아왔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카가미 씨는 말 안해도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몸이 완전히 나은 게 아니니 앞으로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병원에서 벗어나 다시 학교에 가게 된 것은 일주일하고도 3일이 더 흐른 다음이었다. 퇴원을 하는 날, 카가미 씨는 내게 연락처를 줬다. 혹시 무슨 일이 있거나 물어볼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가 의대를 지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도움을 줄 일이 있으면 선배로서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했었다. 카가미 씨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악수를 했고, 나는 내게 조금은 운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학교생활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나는 여전히 전교생 대부분이 기피하는 학생이었고, 놀러나가는 것보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 일정에 쫓겨 바쁘게 뛰어다녔고, 공부할 시간은 빠듯했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 그대로는 아니었다. 지쳐서 코피를 쏟기도 했지만 잠은 푹 잘 수 있었고 몸이 혹사당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거의 없었다. 이즈나는 내 얼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는 더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대학 시험 전의 마지막 시험인 중간고사가 끝난 후, 하시라마는 기다렸다는 듯 놀러가자고 말했다.  

 

 

좋아.

왠일이야? 거절하고 볼 줄 알았는데.

 

 

하시라마가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누가 그냥 간대?

......!

이건 다 끝내고 가야지. 그 전까지는 놀 생각 하지 마.

 

 

나는 손에 들려 있는 시험지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역시, 우치하 마다라가 그럴 리 없지ㅡ하시라마는 그렇게 말하며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도서관 쪽으로 발을 옮겼다. 주머니에서 착신음이 들려 휴대폰을 꺼내보니, 이즈나로부터 언제 들어오냐는 문자가 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즈나도 시험기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간이 많아진 것 같았다.

 

 

이 휴대폰 바꿀 때도 되지 않았어? 겉이......완전히 기스 투성인데.

 

 

하시라마가 내 휴대폰을 살펴보며 말했다. 나는 하시라마의 손에서 낚아채듯이 휴대폰을 빼앗았다.

 

 

어떻게 찾은 건데,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을 것 같냐.

 

 

나는 하시라마에게 도서관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가 찾은 일을 말해주었다.

 

 

그 때,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나는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휴일 아침에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휴대폰을 가져다주러 일부러 학교까지 온 그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영영 이 휴대폰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목소리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어른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코노하에 다니는 학생이라면,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감사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뭐, 지금은 이런 얘기 해 봤자지.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걸.

 

 

길거리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을 거다. 마주칠 확률도 그렇게 높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어디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었다. 하시라마는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 나를 보며 살짝 웃었다.

 

 

그 사람도 네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알 거야.

......그런가.

그리고, 인연이 있으면 만날 수도 있겠지. 원래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된다고 하잖아?

 

 

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하시라마를 쳐다봤다. 인연이라니, 싸구려 드라마의 대사같은 이야기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부터 눈치채긴 했지만 이 녀석, 정말 안 어울리는 것들만 믿고 있다. 안 그래도 사기인데, 저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으니 더 사기다. 아마 거의 모든 여자들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남자는 하시라마거나 하시라마와 별 차이 없는 녀석일 거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었지......

 

 

넌 어떻게 되가는데?

......응?

그 여자.

 

 

그 날 밤과 똑같은 표정이 하시라마의 얼굴을 스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은 미토라는 여자애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시라마가 직접 친구라고 말했으니 그 여자애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럼 누구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관두자.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그냥 옆에서 응원이나 해주면 되는 거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그 여자는 분명 전생에 지구를 구했던가 그랬을 거다.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하시라마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어쩐지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하시라마는 요즘 들어 이렇게 나를 빤히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대로 있으면 꽤나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려서, 그 때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냐고 물었지만 하시라마는 아니, 없어ㅡ 라는 김빠지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럼 왜 그렇게 뜷어져라 보고 있는 건데. 물어봐도 대답을 안할 것 같아 그만두긴 했지만, 정말 궁금할 때가 있긴 했다. 내 얼굴이 잘생겨서 그런 건 아닐 텐데.

 

 

내 얼굴이 그렇게 좋냐?

 

 

미친. 이건 또 무슨 자뻑이야. 내가 말했지만 당장이라도 말을 취소하고 싶었다.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라, 좀......그렇지만 이 녀석은 이런 말에도 ‘좋은데’ 같은 미친 소리를 지껄일 것 같아 불안해졌다. 다행히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니.

......

다 좋아. 얼굴만이 아니라 다.

 

 

하시라마는 싱긋 웃었다. ......씨발. 온 몸에 닭살이 쫙 돋는 게 느껴졌다. 주먹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완전히 굳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도 하시라마는 웃고만 있었다. 못 참겠다. 이 새끼, 죽여버리겠어! 내가 당장 붙잡으려고 하자 하시라마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교문 쪽으로 도망쳤다.

 

 

거기 서, 하시라마!!

서란다고 서는 사람이 어딨어?

이 자식.....!!

 

 

......하시라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도 모르고 레이스를 벌이고 있던 나와 하시라마는 낯선 목소리에 뛰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미토......?

 

 

흰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조금 놀란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하시라마의 눈이 커졌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가까이 다가온 미토는 내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는 하시라마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시라마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토를 바라봤다.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아저씨가 너랑 같이 저녁 먹으러 오라고 하셨어.

 

 

미토의 뒤에는 검은 빛으로 반짝이는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나도 한 번 타 본 적이 있는 차였다. 하시라마는 당황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난 아침에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나도 오늘 처음 들었거든.

 

 

『♬』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하시라마는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굳은 얼굴을 했다. 한참동안 휴대폰을 쳐다보고 있던 하시라마는 작게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집어넣더니 난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가 봐. 그리고......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

저녁 잘 먹어. 먼저 간다.

 

 

나는 하시라마의 어깨를 툭 치며 학교 밖으로 발을 옮겼다. 잠시 후, 뒤에서 시동음과 함께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계속 걸었다. 주머니에서 문자 착신음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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