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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44


 

 

75

 

 

 

재수없는 일은 원래 연달아서 일어난다고 하지만, 왜 유독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할 말이 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눈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어렴풋하게 이 남자가 나에게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 해가 다 지지도 않은 때에 도서관 앞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거리가 아닌 곳에서 이 남자를 만난 것은 병원을 제외하곤 처음이다. 남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말없이 그를 지나쳐 걸었다. 등 뒤에서는 나지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 앞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짧은 골목들을 지나 평소라면 이 남자가 다가가 내 손을 잡아 끌었을 번화가의 광장을 지나쳤다. 계속 앞으로 가면, 집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나올 것이다. 나는 방향을 틀어 인적이 드문 변두리로 발을 옮겼다. 예전에 일한 적이 있었던 편의점의 간판이 눈에 박혔다. 나는 몸을 돌려 남자를 응시했다.

 

 

말해.

센쥬 하시라마와는 어떤 관계냐.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어이없다는 웃음이 입술을 타고 나왔다. 마치 자신에게는 당연히 물을 권리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이 남자가 가소로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언제부터 당신들한테 교우관계까지 허락받아야 했지?

......

 

교우관계 다음에는 뭘 간섭할 생각이지? 내 섹스파트너의 이름까지 당신한테 하나하나 다 불어야 하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 안에는 당신 이름도 들어있겠지-명백히 조롱이 섞인 말투에도 그는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 우치하 히카쿠라는 남자는 그런 남자였지.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래? 이미 다 아는 걸 물을 필요는 없을 텐데. 나한테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떨어져라.

 

 

그는 얼굴을 꿰뜷기라도 할 것 같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이 담기는 일이 드문 검은 눈동자에는 무거운 빛이 어려 있었다. 내가 알아듣지 못한 얼굴을 하자, 그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센쥬 하시라마에게서 떨어지라는 말이다.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뜬금없이 하시라마와의 관계를 묻더니, 이제는 다짜고짜 관계를 끊으라는 말을 들었다. 이 남자는 왜 나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설마 센쥬의 이름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모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나도 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슬슬 이 유쾌하지 않은 대화의 목적이 뭔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치하와 센쥬. 그리고 우치하 타지마. 센쥬의 후계자인 하시라마. 서서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에 나는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큭큭......그래, 그렇군. 위험은 싹이 나기 전에 뽑겠다는 건가?

......

 

그 대단한 우치하에서 가주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가 그렇게 힘든가? 아니면......그 남자한테 오점 하나라도 남기지 않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탄식이 나올 정도로 감탄스럽군, 잘난 우치하 가문의 명예란.

 

 

이 남자를 만난 순간부터 별로 좋다고 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은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기분이 급격한 하락선을 타고 있었다. 열받는다. 정말이지 더러울 정도로 치밀해서 토가 나올 정도다. 이렇게까지 손을 쓸 거라면 그 남자는 애초에 왜 그 여자를 건드렸지? 그 여자가 착각하게 만들지만 않았다면, 나나 이즈나를 태어나게 만들지만 않았으면, 귀찮은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나는 그 남자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말했다.

 

 

우치하의 네트워크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런 사실을 숨기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쉬운 일이지.

......그럼 굳이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내가 그 녀석을 상대로 장사라도 했을 것 같다는 거냐?

 

 

빈정대는 말투로 말하자 남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 남자가 나를 벽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는 고요한 눈으로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다 낮은 어조로 말했다.

 

 

너와 네 동생은 어찌되었든 우치하에 속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너라면 이미 눈치챘을 텐데. 우치하란 이름은 커다란 이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우치하에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센쥬 중에는 우치하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아. 그건 센쥬 부츠마도 마찬가지다.

......

너와 센쥬 하시라마가 가깝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게 어떤 관계든 간에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겠지.

 

 

나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뭔가 이상하다. 아니, 이상한 게 아니다. 이건......

 

 

그 말투는 뭐지? 당신......날 걱정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하는군.

 

 

......불쾌감이다. 순식간에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박하는 말이나 부정하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대답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가슴 속에서 시커먼 응어리가 꿈틀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상체를 숙여 내게 얼굴을 가까이 했다. 그 순간, 나는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무채색을 띠고 있는 눈동자 안의 부드러움을. 그는 손을 뻗어 내 앞머리를 쓸어내렸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눈 앞의 이 남자와 보냈던 밤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상처가 난 곳에 붙여져 있던 반창고.살을 쓰다듬는 손길. 젖은 눈가를 더듬는 혀. 숨을 빨아들이듯이 깊게 입맞춰오는 입술. 나는 순간 그것들이, 그 모든 행동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그의 손은 한 가지의 의미만을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통째로 차가운 물에 담갔다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하자, 그의 손이 내 팔목을 잡았다. 나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사람처럼,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쳤다. 내 머릿속에는 지금, 이 자리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달려가려는 순간, 나는 강하게 끌어당겨져 벽에 밀쳐졌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입술이 부딪혀 왔고, 입을 다물 새도 없이 혀가 입 안을 헤집었다. 손이 단단히 머리를 잡고 있어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단지 입맞춤에 불과할 뿐인데도 온 몸에 열기가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다른 팔은 도망치는 사냥감을 가두는 것처럼 허리를 속박하고 있었다. 나는 양 손으로 어깨를 힘껏 밀어냈지만 그는 더욱 힘을 주어 나를 끌어안았다.

 

눈 앞이, 새빨갛게 변했다.

 

 

 

[퍽!!]

 

 

그는 한쪽 얼굴에 손을 대며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술이 아팠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머릿속은 이미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손이 떨릴 정도로 강렬한 분노가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화를 참을 수 없었던 나는 다시 그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얌전히 맞아주지는 않았다. 그는 내 주먹을 막았고 나는 그의 손이 닿자마자 거기서 손을 떼어버렸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내가 뭘 하든, 누구랑 있든, 그건 당신이 알 바 아니야. 이 이상 나한테 간섭할 생각하지 마. 난, 더 이상......네 남창이 아니야.

 

 

나는 그 남자를 뒤에 남겨둔 채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편의점이 있는 거리로 달려나오자 희미한 담배 냄새가 코를 건드렸다. 나는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에는 작은 핏방울이 맻혀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따끔한 통증과 얼얼함이 몰려들었다.

 

절대로, 그 남자와 다시 관계를 맺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머리를 쓸며 이마를 건드리던 손길과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눈길이 떠올랐다. 그리고 주인을 닮은 그 차가운 눈동자에 무엇이 넘실대고 있는지도. 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최악의, 악몽이다. 나는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원했던 것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입을 닥치고 있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돈으로 나를 사지만, 나는 내 몸을 주고 그에게서 약간의 따뜻함을 산다. 유일한 상호교환의 관계였다. 매번 가슴이 뻐근할 정도의 자책과 후회가 있었지만, 그가 있으면 조금이나마 숨결이 트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남자와의 관계는 거기까지였다.

 

그는 여전히 우치하 타지마의 사람이었고 나는 그의 사생아였다. 그 사실에 변화는 없다. 믿고 싶다는 생각은 한 적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가 나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감정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던가? 연정이라는 것은 이름만으로도 내게 경멸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의 행동은 나에게 기만 이상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 감정에까지 손을 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오만으로 비칠 뿐이다.

 

 

제길......

 

 

그 남자는 내게서 대체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걸까.

대체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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