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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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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차가운 아스팔트의 감촉이 느껴졌다. 쓸린 것 같진 않았지만 따가웠다.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며칠 간 잠잠하다 했더니, 이번에는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어제 이 녀석들을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어제도 당했더라면, 나는 오늘 정말 기절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새끼들아. 날을 잘못 잡았어.  

 

 

나는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평소라면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잠자코 있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즈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은 지나치게 맑았다. 타들어가는 것 같은 감정의 폭포가 넘실대고 있었다. 진정해라. 이성을 잃는 건 안 돼. 나는 몇 번이고 되내었다. 내가 나를 때리던 녀석을 밀쳐내고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다른 녀석들은 약간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손이 떨린다. 저런 녀석들 따위, 아무것도 아닌데. 얼마든지 때려눕힐 수 있는데.  

 

 

죽여버릴 수, 있는데.  

 

 

독한 새끼. 아직 일어날 수 있었냐? 

......일어설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지.

 

 

나는 빈정거리듯이 말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내 앞에 서 있는 녀석들을 응시했다. 

 

 

맞는 것도 이젠 질려서 말이야. 관두려고.  

하, 이 새끼가 미쳤나? 지랄......

가까이 오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나는 한 발 물러서 휴대폰을 꺼냈다. 나에게 덤벼들려고 하던 녀석들은 멈칫했다.  열린 휴대폰에서는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이 개새끼!.......씨발........말해보란 말이야 새끼야!........』 

 

 

대여섯 명의 고함소리, 중얼거리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고 있었다.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은 달려들어 내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했다. 녀석들은 한 방 먹었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비싯 웃었다.  

 

 

이거 학생회에 제출하면 재밌어지겠는데. 안 그래? 아니면......홈페이지에 올려줄까? 

 

 

녀석들은 어이없다는 눈을 하다가 비웃음이 담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웠다. 아직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했군 그래. 어디 끝까지 웃을 수 있나 볼까.  

 

 

그런 파일 따위 여기서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멍청아. 넌 혼자고 여기는 다섯이라고. 그깟 휴대폰 하나 박살 못 낼 것 같냐?  

병신들. 쓰레기 육갑하네.

뭐? 이 개새끼가......

여기에만 이 파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거냐? 머리는 다섯 개나 되는데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돌아가나 보지?

 

 

얼간이들. 그 녀석들은 그제서야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크게 당황한 얼굴을 했다. 나는 여유롭게 휴대폰을 흔들어보였다. 금방이라도 삭제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태도로.  

 

 

이번 학생회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된 건 알고 있겠지? 상습적인 동급생 폭행이라......이걸로 징계위원회가 열리면 십중팔구 퇴학이다.  

......!!!

 

 

가장 뒤에 서 있던 녀석이 웃기지 말라는 듯이 소리쳤다.  

 

 

물증도 없으면서 뭘 잘난척하는 거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잡을 건 그것밖에 없다는 말이지? 안타깝군. 나는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와이셔츠를 잡아 뜯듯이 풀어내렸다. 벌려진 옷자락 사이로, 아물지 않은 상처와 흉터, 멍으로 가득한 맨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걸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나? 

 

 

오랜만에 보니까 아주 그립지?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물증이라면 썩어날 정도로 많았다. 녀석들은 질린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개중에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녀석도 있었다. 보나마나 부모한테 알려질까봐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이놈들은, 뼛속까지 쓰레기다. 나는 씨익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운이 안 좋으면 재판까지 갈 수도 있지......학교 폭력은 명백하게 범죄니까 말이야. 어느 쪽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해? 아, 생활기록부도 멀쩡하진 않겠군.  

이 새끼가......!

대학, 제대로 못 갈 수도 있겠어?

 

 

역시나.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나같이 다 얼굴빛이 변한다. 어떻게 예상이 단 한치도 빗나가질 않을까. 헛웃음도 나오질 않았다. 썩었다. 이 녀석들에게선 하나같이 썩은 냄새가 난다. 나는 차가운 눈으로 그 녀석들을 응시했다.  

 

 

알아들었으면.......빨리 꺼져. 생활지도부에 넘겨 버리기 전에. 

 

 

앞에 서 있던 두 명은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릴 태세였다. 뒤에 서 있는 녀석은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위는 이쪽이다. 녀석들 입장에서는 지금 나를 패봤자 손해밖에 나지 않는다. 결국 녀석들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다른 골목으로 사라졌다. 발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순간, 나는 벽을 잡고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병신새끼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졸업할 때까지는 잠자코 있으려고 했다. 작은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내 몸을 위해서라도, 오늘 있을 이즈나의 공연에 가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정말 쓰러져 버리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니까.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되어버릴테니까. 나는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파일 같은 건, 애초부터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말하는 일 따위 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무의미한 협박이었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아마 그 녀석들은 앞으로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그것도 언제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 하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괜찮을 것이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걸었다. 시간를 보니, 걷는 게 아니라 뛰어야 할 것 같았다. 공연 시작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는 욕을 지껄이며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제길......! 아무래도 차를 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큰 도로가 나오는 곳까지 정신없이 뛰었다. 몸 곳곳이 쿡쿡 쑤셔왔다. 

 

 

헉.......헉....... 

 

 

턱까지 차오른 숨이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결국 나는 숨을 몰아쉬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시계를 확인했다. 5분밖에, 남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도 30분은 걸릴텐데......제기랄, 어떻게 하면 좋지? 꼭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이즈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야 하는데. 한시라도 빨리 가야 이즈나의 공연을 더 볼 수 있을 텐데. 늦게라도 간다고는 했지만......그래도, 이왕이면 시작부터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젠장, 이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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