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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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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높고 낯선 천장에 달빛이 비치는 모습이었다.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이 몰려들었다. 나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시선을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똑바로 누워 있었고, 옷가지들로 어지럽게 되어 있었던 방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머리의 어지러움은, 조금 나아져 있었다. 몸도 아직도 뻣뻣한 감이 있긴 했지만, 그런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팔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몸을 일으켜 다시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 앞에는 처음 들어왔을 때와 다를 바 없는 깔끔한 방의 모습이 있었다.

   

 

어제의, 그 격렬하기 그지없었던 정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이곳에 들어왔다면, 막 청소를 한 객실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방의 모습에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나는 내 옆에 잠들어 있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와이셔츠의 윗 단추만 풀린 상태로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인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감정 없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나는 그에게 안겼다. ‘손님’이었기 때문에 안겼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의사표현에 의한 것이었다. 온몸에 열이 오르고 얻어맞기까지 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던 나를, 그는 거칠게 안았다. 별로 그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손님’은 이쪽의 사정까지 고려해주지는 않으니 말이다.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 몸 상태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어도 머리가 핑 도는 정도는 됐다. 물론 그 날도 린치를 당했었다. 그 때의 ‘손님’은 그런 나를 모텔 방에서 새벽까지 붙잡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손님’의 기호다. 넓적다리에 든 멍에, 가슴 부분에 난 상처에 강렬한 자극을 느끼는 미친놈들도 있다. 아마 이 남자도 그런 부류겠지.

   

침대에서 일어서자마자 중심을 잃을 뻔했다. 흔들리는 바닥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리를 흔들고는 식탁으로 다가가 돈을 집어들었다. 의자에 얌전히 걸려 있는 점퍼가 보였다. 나는 점퍼를 걸치고는 지폐 뭉치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셀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으니까. 어제는 정신이 없어 시간이나 돈을 미리 정해두지 않았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액수였다.

 

나는 객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더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다리 사이가 쓸리기라도 한 건지 약한 통증이 왔다. 얼굴을 구기며 문 손잡이를 잡으려던 나는, 문득 소매 사이로 뭔가 튀어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

   

 

팔의 상처에,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에도, 몇 개가 붙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소매를 내렸다. 답지 않게 친절이라도 베풀었다는 건가.

   

 

하지만 어쩌지. 그 따위 배려는 필요없는데.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방을 빠져나왔다.

한 번도,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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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팔짱을 끼고 이쪽을 보고 있는 이즈나와 맞닥뜨렸다. 나는 순간 아직도 안 자고 뭐하냐고 말할 뻔했다. 호텔에서 나오면서 시계를 확인했을 때의 시간은 새벽 5시였다. 중학생인 이즈나라면 세상모르고 자고 있어야 할 시간이다. 의아한 눈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이즈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잘 한다, 잘 해. 형, 이젠 대놓고 외박이야?

   

 

외박......은 외박이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즈나는 내가 들어오는 시간에 대해 직접적으로 뭐라고 한 적은 없었다. 마음에 안 들어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종종 짓곤 했지만, 그래도 말없이 맞아주는 사람이 이즈나였다. 내 목표를 들은 다음부터는 더욱 그랬다. 내가 해야 하는 공부의 양과 빡빡한 아르바이트 일정을 꿰뜷고 있는 이즈나로서는 나에게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규칙은 있었다.

   

 

자정 이후로 들어올 때는, 반드시 한 번 이상 전화나 문자를 할 것.

   

 

다른 것은 몰라도 휴대폰은 항상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는 규칙이었다. 더구나 이즈나와는 문자든 전화든 자주 하는 만큼, 지키지 않았을 때는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일을 해도, 이 약속만큼은 계속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도 어긴 적은 없었다.

   

어제까지는.

   

 

나는 이즈나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볼 수 없었다. 아마 걱정하느라 잠도 못자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들어왔을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도 도저히 자리에 누울 수가 없어 집안을 서성이고 있었던 거겠지. 나는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꽉 움켜쥔 채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이즈나가 절뚝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이즈나의 손이, 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얼굴에 손이 닿은 순간 이즈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이게 어떻게 된 거야! 형, 얼굴이 왜 이렇게 뜨거워?

뭐......?

뭐, 가 아니잖아!! 열이 이렇게 나는데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어? 형 미쳤어?

   

 

이즈나는 당장 자리에 가서 누워있으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나는 이즈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 물 한 잔만 줘.

지금 물이 문제가 아니잖아! 형, 빨리......

어차피 바로 학교 가야 돼, 이즈나.

   

 

이즈나는 할 말을 잊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즈나를 응시했다. 사실은 이즈나의 말대로 들어가 오늘 하루종일 누워 있고 싶었다. 학교고 뭐고 등을 기댈 수만 있으면 뭐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무릎의 힘이 풀리면 이 자리에서 바로 쓰러져 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를 빠질 수는 없었다. 벌써부터 머리에서는 갖가지 공식들과 개념, 정의들이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수험생이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를 쓸데없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형, 정말 어쩌려고 그래......? 형이 무슨 기계라도 되는 줄 알아? 이렇게 무리하면 누구라도 몸이 망가진다고!! 몸 생각도 좀 해야 될 거 아니야!!!

   

 

어깨를 붙잡은 이즈나의 팔은 떨리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는, 울음이 차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눈으로 이즈나를 바라보았다. 이즈나의 괴로워하는 눈빛이 칼이 되어 마음을 찢어내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나는 말하고 싶었다. 말하고 싶어서, 내 가슴에 쌓인 것들을 털어놓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 왔는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말하고 싶었다. 이즈나에게 했던 수없이 많은 거짓말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고 싶었다.

   

 

형......

   

 

하지만 나는 입을 열 수 없었다. 억지로 입을 열어도,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말할 수 없다. 나는, 할 수 없다. 이즈나에게는 말할 수 없다.

   

   

 

나, 물 한 잔만 줄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웃지 않으면, 그 아이의 눈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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