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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19


 

35

   

 

 

제기랄.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목 부분의 옷깃을 여몄다. 점퍼 속에 숨겨진 목덜미에는 벌레가 문 것과는 거리가 먼, 이빨 자국과 붉은 키스마크들이 가득했다. 아무리 돈을 낸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섹스가 목적이라면, 제발 그것만 하고 그냥 가 줬으면 한다. 애무 따위는, 달콤한 말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이런 물어뜯기는 듯한 애무는 더더욱 사양이다.

 

나는 어둠이 깔린 거리로 천천히 발을 옮겼다. 오늘은 사람들이 그다지 집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는 것인지 여기저기 인파가 몰려 있었다. 시간이 조금 일러서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손님’을 받던 시간에 비해 빠르다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나는 주머니 속의 지갑을 만지며 얼마를 받았는지 떠올렸다. 오늘은, 이 정도로 됐다. 거친 ‘손님’이라 몸이 혹사당하긴 했지만 그 만큼은 보상을 받은 듯 싶었다. 게다가......지금 더 누군가를 만났다간 내 몸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 쉬고 싶었다. 나는 혼잡한 거리의 가운데에 있는 광장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긴 시간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몸이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그래도 여전히 몸은 노곤했다. 조금이라도 쉴라치면, 항상 피곤이 쌓여있는 몸은 기다렸다는 듯이 잠에 빠지려고 했다. 나는 벤치에 기대고 있던 몸을 세워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바닥을 내려다보자 담배 꽁초가 떨어져 있는 하수구가 보였다. 얼마 전까지도 눈이 가득 차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 눈은 다 녹아버리고 없었다. 유난히도 가지 않던 겨울이 서서히 자리를 감추고, 봄의 따스한 공기가 거리를 떠다니고 있었다. 시선을 조금 들자, 머리 위에서 바닥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분홍색, 꽃잎.

   

 

언제 벚꽃이 피었던 걸까. 눈치채지도 못했다. 한창 벚꽃이 만발할 시기가 지나고 있는데도, 신경조차 쓰지 못했었다. 아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일과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눈을 뜨자마자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 되어 있을 때가 많았다. 숨을 쉬는 것도, 시간을 봐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목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이즈나가 일찍 돌아온다고 했었다. 오랜만에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봤을 때는 집 안에 남아있는 음식이 별로 없었다. 가는 길에 장을 보려면, 지금 일어나야 했다.

 

 

!

   

 

일어서 발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나는 몸이 굳는 것을 느꼈지만 이내 한숨을 쉬었다. 지난번에 받았던 ‘손님’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지난번에 이곳에 왔던 것은 한참 전이고 복장도 지금과는 달랐지만, 알아봤을 수도 있다. 나는 골치아프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

   

 

숨이, 멈췄다고 생각했다. 눈 앞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것을 느끼며 그 얼굴을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너였군.

   

 

그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네가 한 말이니......지켜라.」

   

 

나를 그에게 데려갔던 남자가, 나에게 집 열쇠를 넘겨줬던 그 남자가,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36

   

 

 

이거 놔.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내 팔을 붙든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그는 다시 내 손목을 붙잡고 내가 가려던 곳과는 반대방향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려다 입술을 깨물고는 잠자코 그를 따라갔다. 잠깐 충격에 빠져 있었던 머리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감시하고 있었나? 나를,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다 보고 있었던 건가? 아니.......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남자의 충견으로 보이는 이 남자가 왜 내 앞에 다시 나타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내가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반기를 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감시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골목까지 나를 끌고 온 그 남자는 얼음이 떨어지는 듯한 차가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다른 손으로 내 손목을 감쌌다.

   

 

몸을 판 건가?

......

 

   

나는 대답 없이 그 남자를 쳐다봤다. 역시......보고 있었다.

   

 

설마했지만......진짜였군.

......그게 어쨌다는 거지?

   

 

나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 눈동자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아마 감정이 들어있다 한들 그것은 그 남자의 개로서 주인의 평판을 걱정하는 마음뿐이겠지. 나는 손을 뻗어 그가 내미는 봉투를 집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 봉투를 갈기갈기 찢어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그 남자의 눈이, 놀란 빛을 띠었다.

   

 

어리석은......

더 할 말 없으면 꺼져주시지. 이런 건 피차 시간 낭비니까.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네놈에겐 자존심도 없는 건가?

   

 

이번에야말로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 지금 자존심이라고 한 건가? 감히 누구 앞에서 자존심 운운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그 남자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자존심이라고? 웃기는군. 당신이나 그 남자가......나한테 그런 말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여기서 당신한테 그 빌어먹을 봉투를 받았다면 그거야말로 내 자존심을 갖다 버리는 소리다.

......호의를 받은 것은 네 뜻이 아니었나? 그걸 받아들인 것은 너다.

그래, 받아들였지. 살고 싶었으니까. 내 동생을 살리고 싶었으니까!

 

 

나는 그 남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호의. 그래, 그 잘난 호의. 빌어먹을 그 호의.

   

 

그 남자든 당신이든, 나나 내 동생에게 간섭할 권리는 없어. 나는 그 약속을 지키고 있고, 그 약속 때문이 아니라면 당신이 내게 할 말 따위는 없지. 무엇보다......나는 당신이든, 그 남자든 더 이상 연관되고 싶지 않아.

......

내가 몸을 팔든 어쩌든 그건 당신들이 알 바 아니야. 그 잘난 명예가 상할까 걱정된다면, 당신이 입단속을 잘하면 그걸로 끝 아닌가?

   

 

그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아마도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더 좋을지,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좋을지 말이다. 빌어먹게도 충성스러운 개로군. 나는 그를 비웃었다.

   

 

아니면 지금 당장 그 남자에게 달려가서 당신이 본 걸 그대로 얘기해보시지. 내가 몸을 팔고 있다고 말이야.

......!

분명히 그 남자는 당신한테 내 옆에 붙어 쓸데없는 소문이 나지 않게 감시하라는 소리나 할 거다.

   

 

틀림없었다. 그 남자에게 내가 몸을 판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런 쓸모도 없다. 그 사실이 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에게 나의 가치는, 이용도는 그 정도뿐이다. 가슴이, 어두운 구름으로 가득 찬다. 나는 나를 노려보고 있는 그 남자에게서 몸을 돌렸다.

   

 

감시할 거라면, 적어도 일을 방해하지는 마.

.......

   

당신이 나를 ‘살’ 게 아니라면, 그 낮짝을 보이지 않게 해.

   

   

 

죽여버리고 싶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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