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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11

   

   

 

18

   

 

으윽......

   

 

나는 벽에 손을 짚고 일어섰다. 다행히 서고 걷는 데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녀석들은 날 때리다 질렸는지 가버리고 없었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아르바이트를 가야할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뛰려다 허리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통증을 느끼고 쓰려질 뻔했다. 무릎을 끓기 전 벽을 잡아 쓰러지는 것은 막았지만, 이번에는 몸 곳곳이 욱신거리며 비명을 질렀다. 나는 결국 천천히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시.......이렇게 되어버리는 건가.

   

 

분명 이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받은 대로 되돌려주는 것보다 더 멍청한 짓이 바로 입 다물고 맞는 것이었다. 그런 바보짓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나는 자조했다. 그런 녀석들의 관계에서는 누군가가 우위라고 생각되는 순간, 주종관계가 생겨버린다. 말을 하면 따라야 하고, 무슨 짓을 시켜도 반항하지 말아야 했다. 복종하지 않는다면, 응징이 가해졌다. 어이없기 짝이 없는 규칙이다.

   

 

웃기지 말라고.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귀찮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였지 쓰레기 같은 놈들의 똘마니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식들에게 굽신거리느니, 해달라는 대로 해주느니 닥치고 맞는 편이 훨씬 나았다.

   

 

1년 반.

   

 

이제 남은 시간은 1년 반 정도였다. 나는 이미 2학년이었고, 이제 조금만 있으면 3학년이 된다.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그것도 전액 장학을 받으면서 다닐 수 있는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공부를 해야 했다.

   

 

이미 맞는 데에는 이골이 난 상태다. 더 맞는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

   

 

 

익숙하니까.

   

 

버텨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1년 반......아니, 앞으로 1년만 버틴다면.

   

   

   

 

 

 

19

   

 

일요일 오후는 유일하게 이즈나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부쩍 늘어난 학업량과 아르바이트 탓으로 나는 거의 이즈나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매일 세 번 이상 전화를 하고, 문자를 수도 없이 날리긴 했지만 이즈나는 불만이 가득했다. 왜 매일 일요일이 아닌 거냐며 문자로 투덜댈 때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도 이즈나가 보고 싶었지만, 조금의 여유도 없는 하루 일정을 보내야 하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이즈나에게 얼굴과 몸에 난 상처와 멍들을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들킬 위험이 없게 하기 위해 얼마 전부터는 이즈나보다 이른 시간에 학교로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침은 차려놓고 나갔지만,이즈나는 하루 중에 밥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침밖에 없는데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냈다. 아침 자습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자 이즈나는 공부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두고 봐, 형. 대학 가면 통금시간 엄청 일찍 잡아놓을 거니까.

   

   

   

 

오늘은 바쁜 나날 중에서, 오랜만에 찾아온 쉬는 시간이었다. 이즈나는 거실에서 낑낑거리며 재활치료 중이었고, 나는 늦은 저녁을 차리고 있었다.

   

 

아야야야......

무리하지 마라.

분명히 알려준 대로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프지......의사 선생님이 해줄 때는 그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이즈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얇은 다리를 주물렀다. 나는 그런 이즈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즈나의 왼쪽 다리는 멀쩡한 오른쪽 다리에 비해 가늘었다. 깁스를 한 기간이 길었던 탓에 깁스를 풀었을 당시에 다리는 새하얘져 있었고, 다리는 뼈만 있는 것 같았었다. 이제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있고 다리도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아직 목발 없이 걷는 것은 무리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즈나는 이러다 목발에 적응되어버리면 어쩌냐며 울상을 지었다.

   

 

이즈나.

응?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에 정신을 쏟고 있던 이즈나는 내 말에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

   

 

눈은......괜찮은 거냐?

   

 

이즈나의 두 눈 중 한쪽은 의안이었다. 그래서인지 얼굴을 보면, 눈 한쪽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게 보이곤 했다. 오른쪽 눈을 잃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즈나는 곧잘 벽에 머리를 부딫혔다. 눈앞에 있는 사물과의 거리를 제대로 알 수 없었던 탓이었다. 나에게 올 때도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잘 몰라 내가 손을 뻗어 붙들어줘야 했다.

   

 

아직 적응 중이지 뭐. 그래도 왼쪽 시력은 말짱해......다행이지. 한쪽 눈이 실명되면 장님 되기도 쉽다는데.

   

 

이즈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장님이라고 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 몸이 너무 무거워진 것 같아......형은 어떤데? 요즘 학교 어때?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이즈나가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가능한 밝게 웃으려고 노력하며 대답했다.

   

 

그럭저럭. 공부하는 것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어.

안되는데......형은 한눈을 좀 팔 필요가 있어.

......공부하지 말라는 거냐.

너무 공부만 하면 바보가 된대, 형.

   

 

장난기 섞인 말투였지만 이즈나의 눈 속에는 걱정이 담겨있었다. 잦은 피로로 코피가 터지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최근에는 잠까지 제대로 잘 수 없게 되어 피로가 쌓이고 쌓인 상태였다. 일주일에 몇 번은 린치를 당하는 탓에 몸도 온전하지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며칠동안이라도 학교만 다녔으면 싶었다. 하지만 일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 있을 때가 거의 전부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짬이 나면 틈틈이 보긴 했지만 요즘은 밀려오는 잠 때문에 졸다가 점장에게 혼나는 일이 더 많았다. 언젠가부터는 집에 있을 때도 얕은 잠밖에는 자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힘들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이 일그러진 생활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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