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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08

  


 

13

   

 

우치하, 자신 있어서 자고 있는 모양인데 나와서 풀어봐라.

   

 

선생이 바로 앞에서 비아냥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수업시간에 대놓고 엎어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서는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밤늦게까지 한 아르바이트 때문에 피곤에 절은 머리는 여전히 몽롱했다. 잠에 취해 있었던 나는 약간의 짜증스러움과 선생의 못마땅함이 섞인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나갔다. 나는 멍하니 칠판에 적혀있는 문제를 응시했다. 나는 얼굴을 찡그린 채 분필을 들어 수식을 써나갔다.

반쯤 넋이 나간 채 손이 가는 대로 분필을 움직이고 있던 나는 반 녀석들의 떠드는 소리가 언젠가부터 조용해진 것을 눈치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수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선생의 시선은 놀라움과 일종의 기특함을 느끼는 눈으로 변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더니 자는 척하고 공부하는 거였군. 오늘 수업은 우치하 때문에 일찍 끝나겠는데. 저렇게 내가 설명할 내용까지 다 써놨으니 말이야. 너무 자세하게 써놔서 내가 고칠 것도 없겠는데? 우치하, 이왕 써 놓은 거니 설명까지 해보지 않겠나?

   

 

나는 낭패라는 얼굴로 선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반 녀석들은 기묘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함을 애써 감춘 목소리로 다시 분필을 들었다.

   

.

.....그래서 여기서 정수 n을 [x]로 놓고, [x]의 범위를 구하면 [x]는 4,5,6 세 개가 나옵니다. 이 값들을 수식에 대입하면......답은 이렇게 나오게 됩니다.

   

 

선생은 설명 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반 녀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알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렇게 하면 된다. 무늬만 입학 차석이 아니었군 그래, 우치하. 아주 좋아!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친다.

   

 

선생은 한껏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책을 챙겨들었다. 내가 자리로 들어가 앉으려는 순간, 선생이 문 앞에서 손짓했다.

   

 

우치하, 잠깐 나 좀 보자.

   

 

등 뒤로 쏟아지는 시선들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물면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제길.

   

    

 

 

14

   

 

차라도 좀 마셔라.

   

 

선생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인스턴트 녹차를 따라 내밀었다.

   

 

좋은 차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는 싸구려밖에 없어서 말이다. 이해해라.

   

 

나는 말없이 종이컵을 들어 입에 댔다. 모래 섞인 물을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선생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나를 보았다. 대체 왜 자신을 보자고 한 건지 의도를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을 걱정해야 했다. 나는 지금 큰 실수를 했다.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빈틈없이 쌓아오려고 한 탑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눈에 띠지 말아야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고 나서는 한시도 그 말을 잊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 때와 같은 일들이 다시 일어난다면,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했다. 하지만 그렇게 행동할 수는 없었다.

   

 

네가 한 말이니, 지켜라.

그 분은 언제나 너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라.......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네 동생도.

   

 

귓가에서 위협적으로 속삭이던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우치하?

   

 

벗어날 수 없다. 그 남자는 분명 자신의 말을 지킬 것이다. 어떤 변화에도 초연할 것 같은, 그 가면같은 얼굴로. 나는 무슨 일을 당해도 상관없지만, 이즈나만큼은 손대게 할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선생의 얼굴을 쳐다봤다.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거냐? 그럼 양호실에 가라.

아닙니다.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모르겠다. 입을 다물고 몸을 사려야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곧 침묵한다는 뜻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티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봐 온 자신은 받은 것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만큼 되돌려주는 사람이었다. 받은 것이 악의에 의한 것이든, 선의에 의한 것이든 말이다. 17년 동안 굳어온 사고방식과 행동이었다. 여기서도 누군가가 나에게 악의에 찬 행동을 하거나 나를 짓밟으려고 한다면, 분명 나는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돌려주려고 할 것이다.

 

무서웠다. 이즈나가 다치는 것을 눈앞에서 본 지금, 그 때와 똑같은 일을 하려는 녀석들에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나는 예상할 수 없었다. 어떤 행동을 할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피했다. 누구의 눈에도 띠지 않는 학생이 되려고 했다. 누구에게나 무난한 학생으로 보이려고 했다. ‘평범’해 보이기 위해서는 그냥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었다. 적당히 수업에 참여하고, 적당히 학교 안의 흐름, 반 안의 흐름이 어떤지도 알아야 했다. 고립은 눈에 띠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어쩌다 한 번 말을 섞어야 할 때도 마음대로 뿌리칠 수 없었다.

   

 

눈은 절대로 오래 마주치지 않는다. 똑바로 응시하는 것도 피한다.

 

그야말로 위험한 줄타기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1년 반 동안을, 그렇게 지내온 것이다. 눈에 띠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에서 장학금이라는 기회는 놓칠 수 없어 중간, 기말 시험에서는 항상 순위권에 들었지만, 나머지 시험에서는 일부러 점수를 낮춰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피했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혹시나 내가 잘못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 넘게 생각했다.

 

 

그랬는데도.

   

 

편차가 너무 심해서 허당이 아닌가 했었는데, 의외로 학교 시험에서는 항상 순위권 내더구나.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인가?

......네.

이런 줄 알았으면 더 시킬 걸 그랬군. 어지간히 많이 풀지 않으면 그런 풀이를 막 쓸 수가 없지.

   

 

나가고 싶다. 지금은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선생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에도 한번 다른 녀석들 제대로 놀래켜 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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