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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하시마다]Cineraria 04

 

 

08

   

 

 

우치하 마다라.

   

 

나는 굳어있던 목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이즈나의 병실에 있었다. 이즈나를 지켜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바깥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즈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창백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입술과 뺨에 혈색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내 옆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느끼고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예전에 딱 한번 본 적이 있었던, 단정하게 생긴 남자가 서 있었다. 나와 이즈나를 고아원에 보냈던, 그 남자였다.

   

나는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널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계시다. 따라와라.

   

 

그 남자는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그 남자를 노려보았다.

   

 

난 이즈나 옆을 떠날 수 없어.

   

 

그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그것은 나를 향한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머리가 좋은 줄 알았더니, 멍청한 놈이었군.

......

아직도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나? 내가 이렇게 기다려주고 있는 것만 해도 너에게는 커다란 호의란 말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간신히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남자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을 변하게 할 수 있는 힘이, 내게는 없었다. 내 옆에 있는 동생을 지키는 것조차도 할 수 없었던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그 남자는 말없이 병실 입구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원 뒷문으로 나가면 차가 대기하고 있을거다. 네가 없는 동안은 내가 대신 여기에 있어주지. 그분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

   

   

   

 

 

병원 뒤편의 유리문을 열고 나가자, 그곳에는 검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봤던 그 차였다. 내가 차에 올라타자, 검은 제복을 입은 운전사는 빠른 속도로 운전해 병원을 빠져나갔다. 꽤 오랜 시간동안 달린 끝에 드디어 차가 멈췄고, 문이 열렸다. 차 밖으로 나오자마자 펼쳐진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듯한 대저택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저택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차에서 나온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안내했다. 나는 담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문을 지났고, 정원을 가로지르는 좁은 통로를 지나면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복도가 있었다.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건지 슬슬 지친다고 느낄 때가 되어서야 내 앞을 걸어가던 남자는 멈춰 섰다. 남자는 옆으로 물러났고, 내 앞에 있던 커다란 장지문이 열렸다.

   

 

늦었군.

   

 

그곳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릎을 끓고 앉아 있는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은 한쪽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방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등 뒤의 문은 닫혔고, 나와 방 안의 남자 둘만이 남게 되었다. 나는 말없이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는 앞에 놓여 있던 찻주전자를 집어 투박해 보이는 찻잔 두 개에 차를 담았다.

   

 

앉아라.

   

 

그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그는 내게 찻잔이 놓여 있는 쟁반을 내밀었지만, 나는 손대지 않았다. 나를 힐긋 쳐다본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하나의 찻잔을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사방이 고요했다. 하지만 그것은 평화로운 정적이 아니었다. 살얼음 위에 있는 듯한, 칼날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예리한 침묵이었다. 마침내 찻잔을 내려놓은 남자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

 

 

냉엄한 빛을 띤 검은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나와 이즈나를 처음 봤을 때도, 그는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한없이 차가운 눈동자. 소름끼치는 정적. 눈 앞에서 사람이 죽더라도 아무 반응이 없을 것만 같은 눈동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경찰서 앞에서 처음 보았던 그 때, 그는 한 번도 나와 이즈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었다.

   

 

너는 영민하다고 들었다. 내가 하는 말을, 완전히 이해하리라고 여기겠다. 혹여 내가 지금부터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하고 있느냐?

   

 

나는 입을 굳게 닫은 채 도전적인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 좋겠군. 그는 그렇게 말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고아원에서 지금까지, 자잘한 골칫거리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크게 눈에 띠는 것은 아니었지.

......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눈치채고 있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말대로다. 이즈나를 폭행한 녀석들 중에는 고아원에서 본 녀석들도 있었지만, 버젓이 부모가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병원에서 선생들이 대화하던 것이 떠올랐다. 운이 없다면 재판까지 갈 수도 있다. 아니, 그 전에 그들이 경찰에 입을 털어 나를 소년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말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고아에 지나지 않는 내가, 그들의 귀한 자식들을 짓이겨 버린 것을 안 이상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

귀찮긴 했지만, 그런 것을 무마하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지. 그러나......이번같은 일이 또 생긴다면 이쪽도 곤란해진다. 이해하겠나?

   

 

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결국, 그렇게......되어버린 건가. 눈 앞의 남자가 어떤 식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는지는 보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이 침묵해준다면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눈 앞에 있는 이 남자의 힘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나도 이즈나도, 그에게는 귀찮은 방해물일 뿐이었다.

   

 

네가 있던 고아원과도 이미 말을 끝냈다. 그쪽도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더군. 이 일을 없던 걸로 한다고 해도, 평판과 소문 때문에라도 너를 계속 그곳에 두는 것은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대로라면 길거리에서 빌어먹는 수밖에 없겠지.

......

게다가 너에게는 돌봐주지 않으면 안 되는 어린 남동생까지 있다......이건 어떻게 할 수 없지.

......원하는 게 뭐지?

   

 

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저 조용히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많은 것은 바라지 않아.

......조용히, 라고?

그래. 만약 네가 이 시간 이후로, 아무런 사고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너와 네 동생이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겠다. 길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을 일도, 얼어죽을 일도 없다...... 무엇보다 네 동생을 아무 걱정 없이 돌볼 수 있는 장소가 생기는 것이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너에게 이정도라면 꽤 파격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생각할 것도 없는 문제였다. 병원에 있을 이즈나의 잠든 얼굴이 떠올랐다. 있을 곳만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장 큰 걱정거리가 없어지는 셈이었다. 나는 말없이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 남자의 단정한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시선은 변함없이 차가웠다.

   

 

거절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겠다.

......

   

 

나는 대답 대신 그를 응시했다. 그는 대답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애초부터 내게 다른 선택지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내게 선택한 권리 따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거래도 아니고 제안도 아니었다.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가볍게 손뼉을 치자, 뒷문이 열리고 나를 안내해줬던 사람이 나와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내가 방에서 나가려는 순간,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면, 넌 밑바닥 인생이나마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그보다 더 편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명심해라. 또다시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때는 지옥이 뭔지 보게 될 것이다.

   

 

지랄하네.

   

   

 

 

09

 

 

 

나는 병원으로 가는 골목을 걷고 있었다. 얇은 교복 자켓으로는 막을 수 없는 차가운 냉기가 살 속을 파고들었다. 연초의 거리는 삭막했다.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는데도 행인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 혼자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춥다.

   

 

손은 이미 데울 수도 없을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추위에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은 제대로 움직여주질 않았다. 낡은 운동화에 스며드는 날카로운 바람에 발이 몇 번이나 멈출 뻔했지만, 나는 계속 걸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정도는......한쪽 다리 전체에 깁스를 한 채 누워있을 이즈나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이즈나의 얼굴에는 안대가 있었다. 아무 소용도 없을, 안대가. 이미 이즈나의 한쪽 눈은 망가졌다. 그 눈으로는, 검고 검은 장막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이 들어 이즈나가 늘 돌아오는 길로 뛰어갔을 때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내 앞에 상처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이즈나. 극심한 고통으로 하얗게 굳어버린 얼굴을 하고서도 나를 붙잡았던 이즈나.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눈으로 나를 보고 있던 이즈나의 얼굴. 그리고 그 눈에서 흘러내리던, 새빨간 피. 절대로 잊지 못할, 악몽 같은 그 광경.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멍청히 바라보고 있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형, 대단해! 진짜 전교 1등 했어?

   

역시 우리 형이야. 나도 형처럼 열심히 할 거니까, 두고 봐!

   

형, 너무 무리하지 마.

   

 

그렇게나 소중히 여겼는데도, 그렇게나 다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도, 나는 이즈나를 지키지 못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서 눈을 빼앗았다.그 아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은 나였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이즈나를. 내가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줬던 단 한 사람을.

   

 

이즈나.

이즈나.

   

 

이즈나.......

   

 

나는 더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것만 같았다. 온 몸이 수십 갈래로 찢겨져나가는 듯이 아팠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다. 거리에 버려진 것처럼 쓰러져 있던 이즈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얼마나, 얼마나 아팠을 것인가. 다리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 너는 나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제발......형 잘못이 아니야......

   

 

알고 있다. 이즈나는 내 탓을 하지 않는다. 온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 아이의 시선에서 나는 조금의 원망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눈을 채우고 있던 것은, 경악과 놀라움, 그리고 걱정뿐이었다. 그 녀석들에게 맞고 있을 때도,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았었다. 그 지경이 되어서도, 나만을. 나같은 녀석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으윽........으........으흑......우윽......

   

 

아프다.

   

아프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울었다. 가로등 불빛만이 비추는 그 어두운 거리에서 나는 차가운 맨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목놓아 울고 또 울었다. 커다란 유리조각이 박힌 심장에서는 계속 핏물이 흘렀다.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눈은 점점 거세게 내렸고, 나는 그 속에서 홀로 얼어붙어가고 있었다.

   

지옥. 그 남자는 지옥에 대해 말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를 비웃어 주고 싶었다. 지옥이라고? 여기가 지옥이 아니면 대체 어디란 말인가.손발은 이미 오래 전에 감각이 사라져 있었다. 속눈썹과 머리카락은 눈이 내려앉아 만든 하얀 물방울들로 무거워져 있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아직도 내리고 있는 눈보라와 속눈썹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 속으로 보이는 희미한 점뿐이었다. 그냥 눈에 낀 먼지라고 생각했던 그 점은 어느새 검은 실루엣이 되어있었다. 나는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그 실루엣을 멍하니 응시했다. 가로등의 주황색 빛에, 얼굴의 일부가 어둡게 비춰졌다. 드러난 실루엣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 정도의 키로밖에 보이지 않는 소년이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

   

 

그 소년의 검은 눈은, 걱정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어째서인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이라고 느꼈는지, 몸을 굽혀 나를 일으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소년의 손이 내 몸에 닿으려는 순간, 나는 그를 뿌리치고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소년은 당황스러운 듯한 눈을 하고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나는 다시 한 걸음 더 물러서며 말했다.

   

 

그런 눈으로......날 보지 마.

   

 

내 귀로 들어도 거슬릴 만큼의 거친 목소리였다. 나는 그대로 그에게서 몸을 돌린 채 병원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뒤에서 그가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지만, 나는 듣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나를 동정하는 눈 따위는, 내게 연민을 느끼는 눈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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